#prologue
"임산부가 벼슬이냐?"
"임산부 배지가 암행어사 마패냐?"
전국에서 가장 핫한 빵집 성심당을 가려면 긴 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그 유명한 성심당에 임산부는 웨이팅 없이 입장할 수 있고, '심지어' 5%나 할인 혜택을 준다고 나온 기사들의 제목에서 따온 문구들이다.
대한민국 출산율이 0.721명(2023년도 기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리고 0.6으로 내려갈 가능성도 매우 높다며 저출산에 대응해야 한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높은 집값, 낮아지는 취업률, 수도권 위주의 정책과 지방 소멸,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와 높은 사교육비 등등 출산율이 낮아져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실제 결혼과 임신, 출산을 겪으면서 느끼는 저출산의 이유는 비단 위의 객관적인 지표 때문만은 아니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와 여성의 경력 단절에 대한 위기감, 임산부에 대한 혐오 같은 것이 훨씬 더 출산을 두렵게 만든다.
임산부에 대한 혐오라니? 너무 비약하는 것 아닌가? 나도 임신 전에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임산부를 보면 자리를 양보하고, 문을 열어주고 하는 일상적인 배려를 해왔기 때문에 임신을 하면 배려를 많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만삭의 임산부는 어디를 가도 불청객이 되었다.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는데 오래된 엘리베이터가 문이 너무 늦게 닫히는 바람에 겨우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뛰어오지 않았다고 욕을 하는 노년의 남성, 자신도 딸아이를 안고 있으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만삭 임산부의 배를 퍽하고 치며 들어가는 중년 남성,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배를 치고 지나가는 젊은 여성, 임산부임을 확인하자 더욱 삿대질을 해대는 거리의 난폭한 운전자들...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9개월까지 운전을 하고, 더 이상 운전이 힘들어진 다음에는 멀리 나가지 않았다. 병원까지는 남편과 같이 가거나 택시를 탔다. 만삭일 때, 지하철을 탔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내 배를 치거나 눌렀다. 혹여 불의의 사고로 아기를 잃어버릴까 두려운 임산부가 타기에 지하철과 버스가 너무 위험했다. 매일 타고 다니던 버스와 지하철이 너무나 위험한 곳이 되었다. 아마도 수많은 임산부들이 이 위험을 무릅쓰고 출퇴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중 임산부일 때 남학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남성들로부터 성희롱, 성추행을 당한 내용이 이따금씩 떠올랐다.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임산부에게 그럴 수가 있지? 이것이 일반적인 일일까, 작가가 유독 나쁜 일을 많이 당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임산부가 되고 나서 그러한 일들이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고,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시민 의식이 그렇게 많이 성숙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성심당은 사기업이다. 공공기관도 아니고 공기업도 아니다. 기업에서 특정 대상을 배려하거나 특정 타겟층에게 할인을 해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떤 기업은 장애인을, 어떤 기업은 어린이를, 어떤 기업은 어르신을 배려할 수 있고, 또 어떤 기업은 임산부를 배려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실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도 장애인, 어린이, 어르신, 임산부를 배려해도 된다. 이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이다. 졸업을 앞둔 고3도 수능 수험표만 있으면 통신사, 백화점, 식당 등 다양한 곳에서 큰 폭의 할인을 받는다. 저출산 시대에 여러 가지 면에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온 기업인 성심당이 임산부에게 5%의 할인을 해주고,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가게 하는 것은 그렇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만한 일은 아니다.
2024년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기괴한 능력주의에 물들어 있고, 아주 작은 것도 손해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마도 경제 성장이 멈춘, 어쩌면 후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 계층 이동의 가능성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경기 침체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회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성심당의 빵은 고작 빵 하나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사 먹는 빵이다. 중고 거래 앱에서 케이크 하나가 수십 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아파트를 살 희망이 없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은 그 자체로 힐링이고 어쩌면 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성심당의 빵을 공정하게 줄을 서서 사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게다가 오래 줄을 기다렸는데 내 앞에 들어간 임산부가 마지막 남은 망고 시루나 무화과 시루를 사가면 나도 너무 슬플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임산부를 사회적 약자로서 배려하지 않는다면 저출산 문제는 앞으로도 가장 큰 사회 문제일 것이다. 임산부가 뱃속의 아기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이 약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임산부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가하는 것이 당연시되거나 익숙한 사회에서는 저출산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가 없다. 임산부와 태아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면서 정부의 많은 정책들이 헛다리를 짚거나 혹은 반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 많은 국회의원 의석을 명문대 나오고, 비슷비슷하게 좋은 직업을 가졌던 나이 많은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농부와 어부가 있어야 농어촌 문제가 해결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어야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아기 엄마가 있어야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것이 아닌가.
"내가 엄마당"이라는 정당을 만들고 싶다고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를 하다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했으면 싶은 내용들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것이 씁쓸하지만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약간의 위로가 되고, 보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어 저출산 문제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엄마당"의 연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