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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Oct 25. 2024

무통이 무통이 아니야!

페인버스터 논란으로 살펴보는 출산 정책

무통 주사는 천국을 선사할까?


진통이 조금씩 시작되면서 진통이 얼마나 지속될까, 앞으로 통증은 얼마나 더 커지는 걸까 걱정이 되었다. 걱정을 더 부추긴 것은 분만실에 먼저 들어온 산모들의 신음 소리와 비명 소리였다. 양쪽에 누운 산모들이 이른바 '무통 주사'를 요청했다. 새벽 2시에 응급실로 들어왔다는 왼쪽 베드의 산모는 오전 9시쯤 되자 고통을 참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오른쪽 베드의 산모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이었는데 의사에게 서툰 영어로 무통 주사를 놓아 달라고 힘겹게 말했다. 이런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외국어로 의사 표현을 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진통이 오면 머릿속이 하얘졌다. 분만실 간호사들은 두 산모에게 아직 자궁이 많이 열리지 않았으니 조금 더 참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지만 너무 힘들어하던 두 사람은 바로 무통 주사를 맞았다. 먼저 진통이 온 산모들의 고통이 내 것처럼 느껴져 몹시 두려워졌다. 과연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무통 주사는 내게 천국을 선사할까?


소리를 지르면 힘이 빠져서 분만할 때 힘을 못 줄까 봐 라마즈 호흡을 하며 계속 소리를 내지 않고 진통을 참아내던 나의 숨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지자 간호사가 달려왔다. 아직 경부가 3cm밖에 열리지 않았지만 무통 주사를 맞겠냐고 물어봤다. 나는 이전의 진통과는 확연히 달라진 느낌에 지금 맞아야 할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허리를 펼 수가 없었지만 배가 너무 커서 자세를 쉽사리 바꿀 수도 없었다. 마취과 의사가 오기까지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겠지만 그 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무겁고 길게 느껴졌다. 척추 쪽으로 주사 바늘이 들어가고, 곧이어 지리산 뱀사골 계곡에 발을 담갔을 때처럼 뼛속까지 시린 느낌이 드는 차가운 액체가 척추로 흘러들었다. 조금 있으니 진통이 조금 덜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통이 무통이 아니야!


'이걸 왜 무통 주사라고 하는 거야? 계속 아픈데...'


진통은 살면서 처음 겪는 가장 강한 통증이었다. 이렇게 계속 통증을 느끼다가는 숨을 못 쉬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라마즈 호흡은 확실히 통증을 견디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래도 너무 아팠다. 흔히 '무통 주사'라고 부르는 경막 외 마취제(PCA)를 사용하자 진통을 조금 덜 느꼈지만 아기를 낳기까지 진통은 계속되었다. 13~14시간 정도의 진통 끝에 아기를 품에 안아볼 수 있었다. 아기가 너무 예뻤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이렇게 긴 시간 진통을 하고, 마치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것 같았는데 사람들은 내게 "순산을 축하합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는 것을 사람들은 순조로운 출산이라고 하는 것이다. 의료 기술이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해산의 고통을 0으로 줄일 수 없고, 진통과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산모에게 수많은 위기의 순간들이 지나가기 때문에 특별한 이슈가 없으면 순산이라고 한다.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 꼬박 하루를 진통을 하고도 아기가 나오지 않아 제왕절개를 하는 경우도 있고, 산모가 의식을 잃거나 과다 출혈이 생기는 등 각양각색의 위험한 상황도 여전히 많다. 응급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이토록 과학 기술과 의료 기술이 발달한 2024년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목숨을 걸고 아기를 낳는다.


페인버스터 병용 금지


이미 아기를 낳았고, 자연 분만으로 아기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피거 거꾸로 솟는 것 같은 기사를 보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페인버스터 병용 금지 개정고시안을 내놓았다. 복지부는 '수술 부위로의 지속적 국소마취제 투여법(CWI)' 급여 기준을 바꾸기 위해 "오는 7월부터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painbuster)를 같이 사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요양 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 일부 개정안을 행정 예고하였다는 것이다. '지속적 국소마취제 투여법'은 통증을 날려버린다는 의미의 페인버스터로 불린다. 상처 부위에 초소형 관을 삽입해 국소적 마취제를 투입하는 약물과 기술을 통칭하는데 그동안 본인부담률 80%의 선별급여 항목으로 적용돼, 제왕절개 하는 산모들이 수술 후 무통 주사로 불리는 경막 외 마취제(PCA)와 함께 사용해 왔다.


기사가 나오자 산모들과 의료계 모두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 2종 다 맞을 수 있도록 하되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며 "선택권을 존중해 달라는 산모와 의사 의견 등을 종합해 개정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무통 주사와 페인버스터를 병용할 수 있지만 비급여(전액 환자 부담) 80%였던 본인 부담률을 90%로 높이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계속 왔다 갔다 했다. 본인 부담률을 100%로 높이겠다고도 했다가 엄청난 여론의 질타 속에서 페인버스터와 무통주사의 병용 금지 관련 개정 고시안은 현재 홈페이지에서 조용히 삭제되었다.


제왕절개 수술은 최소 11cm 이상 복부를 절개하기 때문에 외과 수술 중에서도 상처 부위와 통증이 매우 심한 편이라고 한다. 페인버스터 병용이 불가하면 고통을 줄이기 위해 PCA 사용량을 늘려야 하고, 그 부작용은 오롯이 산모가 떠안게 될 것이란 의사들의 의견이 있었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두 가지 약물의 병용 사용이 유의미한 효과가 있음을 제시하고, 복지부에 세 차례나 병용 요구 공문을 보냈다는데 복지부가 언론에 뿌린 자료에는 산부인과 학계가 미회신 했다고 되어 있었다. 왜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언론에는 제대로 되지 않은 자료를 뿌리면서까지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페인버스터를 비급여로 하면 건강보험 재정이 125억 정도 절감된다고 하는데 출산율이 곤두박질치는 이 시기에 125억 때문에(?) 이러한 반발을 예상조차 하지 못하고, 계속 말을 번복하는 정부 부처의 행동이 너무 한심해서 헛웃음도 나오질 않았다. "인간에게는 깨우치라고 아픔이 오는 것이니 고통 없이 출산하면 배울 걸 못 배운다"라고 주장한 역술인의 말 때문이라는 정치권의 말은 믿고 싶지 않다.


탁상공론으로 만드는 출산 정책


이유가 어쨌든 간에 왜 출산율이 곤두박질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이 페인버스터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출산과 관련된 정책을 출산율이 왜 낮아지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일말의 고민이 없는 사람들이, 정책의 영향과 효과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탁상공론으로 만들어 쓸데없는 데에 예산을 퍼붓거나 꼭 필요한 예산을 줄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다. 그리고 출산을 하는 산모와 출생한 아기와 그 가족들에게 조금의 공감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책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큰 고통을 참고 아기를 낳은 산모는 거의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아기를 돌보기 시작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을 개인, 혹은 한 가정이 감당해야 할 고통으로 돌려버리는 정부는 애국자 운운하며 출산을 장려할 자격이 없다. 아니, 심지어 의료계와 팽팽하게 맞서 산모들이 구급차를 타고도 응급실에 들어갈 수도 없어 구급차에서 아기를 낳는 기사들을 접하는 이런 상황에서 출산을 포기하는 것이 어찌 자연스럽지 않을 수가 있을까!


경쟁이 만연하고 경제 성장은 둔화된 시대적 배경은 결혼의 시기를 점점 늦추었다. 내가 마흔에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산후조리원이나 어린이집에서 큰언니일 줄 알았다. 웬걸! 산후조리원에서는 비슷한 연배의 여성들이 매우 많았고, 어린이집 엄마들 중에서는 중간 나이 정도 되는 것 같다. 노산이니 제왕절개를 해야 할까 묻는 나의 물음에 산부인과 주치의 선생님은 요즘 마흔은 노산도 아니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30대 후반~40대 초반에 초산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몸의 회복도 훨씬 느릴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낳기로 결정한 산모들에게 고통의 비용마저 개인이 더 많이 감당하라고 하면서 어떻게 초저출생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것일까?


작은 공감이 필요해


무통 주사는 무통이나 천국을 선사해주지 않았다. 고통을 경감시켜 주었을 뿐이다. 무통 주사의 별명은 '고통 경감 주사' 정도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산모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여성들은 출산의 고통을 오롯이 그 개인이 겪어낸다. 의학의 발달이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경감시켜주고 있음에 감사하지만 여전히 큰 고통과 많은 위험을 개인이 이겨내야만 한다. 임신 기간 내내 얼마나 여러 번 유서를 썼는지 모른다. 출산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은 나만 가진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뱃속의 아기가 너무 보고 싶기 때문에 죽음에 닿게 될지라도 아기를 낳아보겠다고 용기를 내보는 것이다. 임신 기간 내내 입덧과 두통, 허리 통증, 소양증, 요실금 등 다 열거할 수도 없는 통증과 고통을 오로지 아기를 만나고 싶은 소망으로 다 겪어내고 있는 산모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공감해 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아주 작은 공감이 초저출생 시대를 마감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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