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에 왜 갈까?
"말하자면 산후조리원은 호텔과 병원을 합친 곳이에요. 그러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에요. 힘이 들지만 아기들을 정말 좋아해서 그만둘 수가 없어요."
산후 우울증으로 매일 눈물을 펑펑 쏟고 있는 내게 원장님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도 힘든 일이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산후조리원에서 제일 힘든 사람은 산후조리를 받는 산모다. 산후조리원에서 엄청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산모가 얼마나 힘든지 아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산후조리원을 천국이라 부르는 것일 게다. 어떤 이들은 산후조리원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것을 두고 남편 등골 빼먹으며 팔자 좋게 누워서 대접받는다는 말을 싸질러댄다.
'호텔'과 '병원'을 합쳤다는 것은 산후조리원이 '쉼'을 주는 공간이긴 하지만 산모들이 '환자'의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신생아는 많은 돌봄을 요구하기 때문에 '환자'인 산모가 아기를 돌보기 위해 필요한 많은 일을 다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그 일을 다 하면서는 몸을 회복할 수가 없어 아기에게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산후조리는 산모뿐만 아니라 아기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흔히 출산을 할 때의 통증으로 진통만을 생각하지만 실은 출산 이후에도 통증이 계속된다. 출산을 하면서 많은 근육들이 찢어졌기 때문에 온몸에 통증이 있기도 할뿐더러 회음부 통증, 훗배앓이와 제왕절개 수술로 인한 통증 등으로 산모들은 진통제를 먹거나 맞으면서 극심한 통증을 버텨야 한다. 게다가 수유도 하고, 기저귀도 갈고, 아기 상태도 체크하면서 동시에 산후조리원을 나가면 오롯이 감당해야 할 일들을 위해 빠르게 몸을 회복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빌어 각종 모진 말과 상처 주는 언어들로 엄청난 통증과 우울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산모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산후조리원은 일종의 학교 역할도 하는 것 같다. 아기를 키우는 데에는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가 너무나 중요하다. 산후조리원에서 전문가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젖몸살이 나지 않게 마사지를 해주시고, 유축을 몇 시간 간격으로 할지 조언해 주셨다. 젖이 많았음에도 병원에서도 관리를 잘 받고, 산후조리원에서도 관리를 잘해주셔서 그랬는지 다행히 젖몸살은 오지 않았다. 젖몸살은 진통만큼이나 아프다고, 혹 어떤 사람들은 그보다 더 아팠다고도 한다. 속싸개를 하고, 아기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신생아 목욕 시키는 방법도 배운다.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비싼 돈을 주고 산후조리원에 간다. 지금은 전통 사회에서처럼 대가족도 아니고 매일 드나드는 옆집에 아기를 많이 키워본 여성들이 많은 시대가 아니다.
산후조리원에서 공주 대접받는 거 아니라는 제목을 썼지만 실은 산후조리원에서 많은 배려를 받았다. 매 시간 식사와 간식이 제때 나왔고, 피나 젖이 묻어 자주 갈아입는 옷들을 매일 빨래해서 주셨다. 때로 식사가 오는 시간에 잠이 들어 있으면 직원 분께서 살금살금 들어오셔서 밥을 놓고 나가시기도 했다. 신생아실 간호사 출신의 선생님들께서 아기를 봐주시니 불안해하지 않고, 산후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고, 밤에 조금 더 잘 수 있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처럼 산후조리원 직원 분들은 마음대로 방문을 열었다. 밥을 주러 오시고, 청소를 하러 오시고, 우울증이 심해지지 않았는지 체크하러 오시고... 계속 낯선 사람들이 내 방에 들어왔다. 호텔에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산후조리원은 호텔이 아니었다. 역시나 병원에 좀 더 가깝다. 보통은 2주 정도 쉬러 들어가지만 내 기억에 그동안에 쉬고 있다고 생각한 시간은 거의 없었다.
2주 동안 최대한 몸을 회복해야 하고, 많은 것을 배워가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였다. 실제로 각종 교육을 많이 받기도 했고, 때때로 잔소리(?)를 듣거나 혼나기도 했다. 특히, 젊은 산모들은 양말을 신으라거나 목에 수건을 두르라거나 원피스 아래 바지를 입으라는 등 엄청난 잔소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나는 노산이라 몸이 너무 안 좋고 추워서 "저렇게 하고 다니세요."의 '저렇게'였기 때문에 그런 잔소리는 듣지 않았지만 초반에 수유할 때 자세라든지 속싸개를 싸는 방법 같은 부분에서 지적도 꽤 많이 받았다. 정말이지 아기를 낳은 직후에는 그 어떤 지적도 받을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계속 수유를 하고, 유축을 하고, 젖이 잘 나오라고 질리게 미역국을 먹었다. 소고기 미역국, 황태 미역국, 감자 미역국, 가자미 미역국, 들깨 미역국, 조롱이떡 미역국... 2주 동안에 미역국의 거의 모든 조합을 다 만난 것 같다. 신생아는 두 시간에 한 번은 맘마를 먹어야 한다. 모유건 분유건 말이다. 그래서 산후조리원에 있으면 수유콜이 끊임없이 오는 느낌이 든다. 뭘 하다 보면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지 않나? 전화를 안 받으면 휴대폰으로도 오고, 화장실도 전화가 연결되어 있어 전화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잠을 자러 산후조리원에 가지만 잠을 좀 잘까 하면 걸려 오는 전화에 하릴없이 커다란 수유쿠션을 메고 수유실로 향한다. 젖을 먹이는 것도 서투르고 젖을 먹는 것도 서투른 엄마와 아기가 서로 땀을 흘리며 씨름을 한다.
끊임없이 오는 전화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다. 결국 우울증을 체크하러 들어오신 원장님 앞에서 너무 힘들다며 눈물을 흘렸다. 원장님이 등을 도닥거리며 모유가 나오는 동안에 호르몬이 나를 더 우울하게 하는 원인도 있다고 하시며 수유콜을 좀 조정해 주겠다 하셨다. 그다음부터는 아침 첫 수유콜을 받으면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좀 쉬겠다고 하면 유축한 모유를 주셔서 잠깐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아기가 배가 고파 우는 소리는 전화벨만큼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았다.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는 했지만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는 너무 힘들었다. 물론 그런 의미에서 산후조리원이 천국이기도 한 것이다. 집에 오면 오롯이 부모가(모유 수유는 엄마가) 떠맡아야 하는 수유를 산후조리원에서는 시간에 잘 맞추어해 주기 때문에 적어도 밤잠은 잘 잘 수 있다. 물론 유축을 계속하는 (대부분의) 산모들은 길게 밤잠을 자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산모의 약 80%가 이용한다는 산후조리원의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특히 그 오름세는 더욱 무섭다. 보건복지부의 전국 산후조리원 현황 통계를 보면 가장 저렴한 일반실 기준 2주 평균 조리원 비용이 2019년에 263만 원이었는데 2023년에는 335만 원으로 5년 새 27.3%가 올랐다. 서울은 일반실 평균 이용료가 433만 원으로 가장 높았는데 특히 강남은 평균 806만 원이고, 통계에 등록된 민간 조리원 중에 가장 비싼 강남의 A조리원의 비용은 1700만 원이나 되었다. 게다가 전국의 산후조리원은 2019년 541곳에서 2023년 456곳으로 5년 새 15.7% 감소했다. 99개 시군구는 아예 공공·민간 산후조리원이 전무했다. 산후조리원은 비용 부담이 크기도 하지만 숫자가 적어서 예약하기도 쉽지 않다. 임신을 확인하면 바로 산후조리원을 예약해야 하고, 그 지역에 산후조리원이 없으면 ‘원정 출산’을 떠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비싼데 꼭 산후조리원에서 산후조리를 해야 하는가?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좋은 것은 내게 익숙한 집에서 조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변에 산후도우미를 집으로 부르고 산후조리원에는 가지 않는 분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집안일을 하지 않고, 오롯이 몸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한 많은 산모들이 익숙함을 버리고 쉼을 선택했다.
집과 호텔 중에 더 편한 것은 당연히 집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쉼을 위해 여행을 가고, 비싼 호텔을 간다. 익숙하지 않은 가구들은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어주고, 가전제품이 거의 없는 작은 방은 어떤 면에서는 강제로 집안일을 못하게 한다. 산모에게는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집안일을 벗어나 오롯이 몸을 회복하는 시간 말이다. 특히 경산모의 경우, 첫째나 둘째 아이와 함께 있으면 몸의 회복이 거의 불가하다. 그래서 아기가 너무 보고 싶어 깊은 우울감에 빠지면서도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기 위해 불가피하게 많은 돈을 들여 산후조리원을 찾는다.
나는 코로나 시기에 아기를 낳아 산후조리원 동기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집에서 혼자 조리를 하는 것보다는 같은 시기에 아기를 낳은 엄마들끼리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산후 우울증을 이겨내는 좋은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나보다 몇 개월 늦게 아기를 낳은 친구는 산후조리원 동기들과 자주 만나 육아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것 같았다. 혼자 아기를 돌보며 많이 우울해졌던 나는 산후조리원 동기들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는 친구가 많이 부럽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아기 낳고 집에서 조리를 잘도 하는데 왜 한국 산모들은 다 산후조리원에 가나? 하는 질문에 대해 호주에서 육아하시는 작가님이 쓴 글이 좋은 답변이 되었다. 호주에서는 산모가 아기를 낳고 회복해야 하므로 육아, 집안일, 산후조리를 남편이 다하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여서 자신은 특별히 산후조리를 할 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였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남편이 산후조리를 할 수 없는 문화 속에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을 다루는 글에서 좀 더 깊이 다루도록 하겠지만 일단 남편의 출산 휴가가 너무 짧고, 남성들이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집안일을 하면서 크는 문화 속에서 자라지 않았고, 남편이 산후조리를 해줄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큰 비용을 들여서 전문성이 있는 곳에서 산후조리를 받는 것을 택하게 되었을 것이다.
한국의 산후조리원은 해외에서도 이미 관심을 많이 받고 있고, 수출도 하고 있다. 한국 산후조리원을 베껴서 우리가 원조라며 해외 수출하는 중국 업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을 보니 역시 산후조리원은 해외에서 블루오션이 될 것 같기도 하다. 현재와 같은 가족 구성의 형태에서는 산후조리원이 매우 좋은 방식의 산후조리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