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 정책의 득과 실
우리나라가 아직까지도 남편이 산후조리를 하기 어려운 문화 속에 있다면 산후조리원이 생기기 이전에 누구의 산후조리를 받았다는 것인가? 모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이름, 엄마! 아마도 전통적으로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의 산후조리를 받았을 것이다. 다른 모든 나라의 산후조리 방법을 알 수 없지만 매우 보편화된 산후조리의 모양은 아기를 낳아본 경험이 있고, 가장 친근한 사람인 '엄마'의 산후조리일 것이다. 전통사회부터 어머니의 산후조리를 받아왔는데 왜 이게 문제가 되냐는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 중에 시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준다고 먼저 말씀을 하셔서 부담스럽다는 글이 꽤 많다. 우리 엄마는 나와 여동생을 낳았고, 두 번의 산후조리가 필요했다. 매번 시어머니가 지방에서 올라오셨다. 미역국은 잘 끓여주셨지만 눈치가 보여서 밥은 산모 본인이 차렸다고 한다. 집안일도 대체로 엄마가 하셨다고 한다. 더구나 아들을 낳은 것이 아니라 너무 서운해하시는 티를 내셨다. 그건 전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크는 내내 할머니로부터 네가 아들이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대학 입학한 스무 살 남짓까지도 말이다. 그런 말이 상처가 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둘째를 낳았을 때였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산후조리에는 첫째를 돌보는 일까지 들어 있지는 않았다. 물론 이것은 산후조리원도 마찬가지겠지만 첫째와 분리되지 않은 환경에서 어린 첫째를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산모는 산후조리를 사실상 거의 할 수가 없다. 우리 아기는 22개월인데 아직도 나만 보면 껌딱지처럼 붙어 있다. 엄마와 내가 한 몸에서 분리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나만 보면 안아달라고 하고, 밥도 내 무릎에 앉아 먹겠다고 하고, 잠도 엄마랑 자야 한다고 한다. 아마 나도 어릴 때 그랬을 것이다. 아기들은 다 엄마랑 붙어 있고 싶고, 엄마가 낳은 신생아를 돌보기 위해 나를 안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세상을 잃은 것마냥 서러울 것이다. 시어머니 밥상까지 차린 엄마가 시어머니에게 첫째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안 그래!"
아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그러하시다. 나도 엄마가 되었지만 내가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있다가 죽을힘을 다해 낳고, 내 삶의 많은 부분을 헌신하여 키운 내 자식과 다른 아이들은 아주 다른 존재이다. 정말 사랑하는 동생이 낳은 조카가 너무 예쁘고 귀엽지만 자식 같지는 않다. 그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을 정말 사랑하지만 당신의 배우자까지 그만큼 사랑하실 수 없다. 이건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나 매한가지다. 당신의 엄마는 당신에게만 그렇게 한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란 것을 잊지 말자.
우리 할머니는 남매 여덟을 낳고 기른 분이시고, 가부장제가 완전히 체화된 분이시니 지금의 시어머니들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어려운 사람 중의 한 명이고, 산모는 몸도 아프지만 정신적으로도 매우 우울하고, 예민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시어머니의 산후조리를 받는 것은 몹시 불편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같은 말을 시어머니에게서 듣는 것과 친정어머니에게서 듣는 것은 매우 다르다. 친구가 아기 이유식할 때, 아기가 남긴 음식을 치우니까 그걸 엄마가 먹어야지 너는 그걸 다 버리냐고 했다는 말이 평생 가슴에 대못처럼 박혀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친정어머니께 자주 들었지만 하나도 상처받지 않았다. 출산 후에 호르몬 변화도 크고, 영아기 때까지 아기에게 모든 관심과 집중을 쏟는 엄마는 날카로울 수밖에 없고, 매우 예민해져 있는 시기이다. 모유 수유를 하고 있으면 호르몬 영향이 더 커서 우울한 감정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든다. 하물며 아기를 낳은 직후에 얼마나 많이 예민해져 있고, 우울한지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어머니의 산후조리는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키기에 매우 충분하고, 산모의 산후조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높다.
"엄마, 왜 친정 엄마가 아니라 시어머니한테 산후조리를 받았어?"
"너희 아빠가 불편해하니까!"
그렇다. 사위에겐 장모님이 불편하다. 친정 엄마의 산후조리는 남편의 불편함을 초래한다. 집으로 출근하시는 산후도우미보다 대개는 더 불편하다. 산후도우미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것은 그리 불편하지 않지만 장모님이 차려주는 밥을 먹는 것은 역시 불편하다. 다 맛있다고 해야 하고, 맛있는데 왠지 좀 소화가 되지 않고 불편하다. 그리고 장모님은 지금 아기를 낳은 딸이 세상에서 제일 안쓰럽고, 내 딸은 아기를 낳느라 힘들었는데 같은 부모이면서 하나도 아프지 않은 사위가 왠지 밉다. 그러니 친정어머니의 산후조리 역시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
더 큰 문제는 갓 엄마가 된 산모는 엄마의 마음에 몹시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갑자기 내가 살아오면서 엄마에게 한 잘못들이 머릿속에서 영화 필름처럼 촤르륵 지나간다. 엄마에게 세상에서 제일 미안한데 그 엄마가 또 나의 산후조리를 하면 더 미안하다. 마음은 고맙고 미안하지만 몸도 힘들고, 신경이 예민하니 엄마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 그래서 산후조리를 받으면서 타인에게는 하지 않았을 온갖 짜증을 엄마에게 다 부리고, 밤에 또 후회하고, 눈물 나는 하루하루를 반복할 것이다. 내가 절대로 산후조리를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우리 엄마였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할 것이 눈에 선해서 그랬다. 다른 산모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어머니의 산후조리를 받는 산모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친정어머니건 시어머니건 간에 정말 헌신적으로 산후조리를 해주시는 분도 많고, 어머니께 산후조리를 받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었던 산모도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이 절대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소모가 많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산모뿐만 아니라 어머니 입장에서도 그렇다. 그러니 산모가 정말 원하고, 어머니도 충분히 원하시는 때에만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산모가 먼저 요청한 것이 아닌데 어머니의 입장을 전하지는 말자.
경제적으로 생각하면 어머니의 산후조리도 비용이 드는 방법이라는 것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어머니의 노동력을 비용 없이 이용하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다. 산후조리는 정말 고된 일이다.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는 방법이 있겠으나 얼마를 드리든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는 직업적으로 이 일을 택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하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 용돈의 여부와 관계없이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을 평생 가져가야 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비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께 산후조리 이후에도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많은 가정에서 아기가 어릴 때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다. 그것도 물론 부모님이 가까이 계시는 천운(?)을 타고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는 하겠지만 가장 급할 때는 역시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도 많이 늙어 가고 계시고, 내 자식을 키우는 것보다는 손주를 키우는 게 더 힘들다. 당연히 해야 할 일도 아니고, 아무래도 더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산모들은 어머니로부터의 산후조리를 원치 않을 것이다.
20대 산모의 분만 건수가 105,931건에서 38,695건으로 63.5% 급감했다. 30대 산모의 분만 건수는 2013년 303,085건에서 2022년 185,945건으로 38.6% 감소했다. 반면 40대 산모의 분만 건수는 같은 기간 13,697건에서 19,636건으로 43.4% 증가했다. 산모의 평균 나이대가 올라가면 몸의 회복이 더디기 때문에 산후조리를 더 전문적인 인력에 의해 해야 할 필요성이 늘어난다. 또한 산모의 어머니 나이대도 훨씬 더 높아지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많은 산후조리는 전문가가 해야 할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2023년 4월, 서울시가 산후조리경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직후부터 서울 시내 많은 산후조리원이 요금을 인상했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 가격 인상 우려를 이유로 반려하면서 서울시가 해당 비용을 바우처 형태로 바꿔 지원하게 되었다. 산후조리 지원 금액은 산모 신생아 건강 관리 서비스와 의약품, 건강식품, 한약 조제, 운동 수강 서비스로 둘로 나뉘어 각 50만 원씩 바우처로 형태로 지원된다. 산후조리원은 마사지 비용을 별도로 결제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바우처를 사용하게 했지만 정책 효과는 크게 반감되었다.
서울시가 산후조리원 지원금으로 태아 1명당 최대 백만 원을 지원한다는 기사 제목을 보자마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산후조리원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 뻔했다. 결국 산후조리원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기사를 읽었다. 심지어 서울시는 정부와 협의를 끝내지도 않고 지원책을 발표해 시장 가격만 올리고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도 못했다. 산후조리원의 가격 인상은 울며 겨자 먹기로 오롯이 출산 가정이 감당하게 되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자꾸 출산 가정에 지원하는 금액에 여러 가지 제한을 둔다. 대체로 그러한 제한은 그 분야의 시장 가격을 올린다. 경제학을 깊이 배우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는 일인데 정책 입안자들은 왜 늘 예상하지 못할까? 제일 좋은 지원은 출산 축하금 정도의 이름으로 현금이나 바우처 지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곳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서울시가 '산후조리 경비'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으면 산후조리원 비용이 저리 급격하게 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정책적 실수다. 안 그래도 산후조리원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고 있는데 불난 데 부채질한 꼴이다. 산후조리원이 줄어들어서 더 비싸지는 경향도 있으니 차라리 공공 산후조리원을 늘릴 수도 있었겠지만 역시나 더 손쉬운 방법, 혹은 더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택했고, 그로 인한 비용 지불은 출산 가정이 떠안게 되었다.
출산할 때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자연분만을 해도 3일 정도는 입원을 하고, 여러 처치가 들어간다. 제왕절개를 하면 입원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바우처로 임신 기간의 진료비와 출산할 때의 병원비를 다 커버하기는 어렵다. 아기를 맞이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배냇저고리와 천 기저귀, 많은 양의 거즈 손수건, 1회용 기저귀, 아기용 세정제와 로션, 욕조, 장난감, 이불... 한 사람을 맞이하는 일은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다. 그리고 산후조리원을 가든 산후도우미를 모시든 간에 산후조리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출산 비용 때문에 아기 낳기를 꺼리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일시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이 부분은 각자가 형편껏 준비할 것이다. 산후조리원이 인기가 있지만 비용적으로 부담이 된다면 산후도우미를 부르는 방법을 택하거나 앞서 언급한 어머니의 산후조리나 남편의 산후조리를 택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출산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기를 키우는 데에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할 것이라는 두려움, 아기를 키우면 노후를 준비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아기를 키우는 데에 내 삶을 다 헌신하고 나를 잃어버리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등등으로 인해 출산을 쉬이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출산 정책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집 값, 지방 소멸, 일자리 창출, 노동 문제, 사교육 문제, 국민연금 고갈 문제 등이다. 청년들은 경제 성장 둔화 혹은 마이너스 경제 속에서 당장 아기를 키우는 데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고, 노후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유난히 비교 경쟁이 심한 한국의 문화 속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드는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고부 갈등, 남녀 갈등,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는 것도 출산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저출산 문제는 대한민국 모든 문제의 집합소다. 산후조리 비용이나 산모와 영아의 교통비를 일부 지원해 준다고 해서 갑자기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 갈등 해결과 주거 및 노동 문제 등에 대한 지속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저출산 문제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큰 흐름 속에서 과감한 정책 펼쳐야지 지자체 별로 약간의 출산 지원금 주는 것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산후조리에 예산을 투입하여 출산 가정을 돕고 싶다면 공공 산후조리원을 늘리고, 산후도우미(산후관리사)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나은 방법일 듯싶다. 공공 서비스를 늘리는 것은 중요하다. 분만 비용이 대부분 건강보험으로 해결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은 좋은 정책이다. 정부가 산후조리원과 관련해 재정을 사용하고 싶다면 산후조리 명목의 비용을 주는 것보다는 공공 산후조리원을 늘리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공공 산후조리원이 산후조리원의 표준적인 모델을 제시할 수 있고, 산후조리원이 줄어드는 문제에 대한 대안도 된다. 그리고 공공 산후조리원이 늘어나면 다른 산후조리원들의 가격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산후도우미 지원도 소득 기준을 까다롭게 두지 말고 더 큰 폭으로 확대할 필요성이 있으며 산후도우미에 대한 교육 및 관리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한다면 그것은 출산 가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면 그것이 시장 가격을 크게 올리지 않는 방향으로 모색되면 좋겠다.
햇빛도 많이 비치지 않는 작은 방이 때로는 감옥같이 느껴진 시간이었다. 2~3시간마다 유축을 하며 젖소의 비극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었다. 매일매일 눈물이 났고, 갓 태어난 아기에게 우울한 마음마저도 죄스럽고 미안한 시간이었다. 40여 년의 삶을 살아오면서 가장 고독하고 우울한 시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간은 내 평생에 가장 행복하고 풍성한 시간이기도 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잠깐 동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가도 수면 부족과 호르몬 변화가 가져다주는 깊은 우울의 늪을 건너야 했다.
부디 산모들이 전문적인 사람들의 케어를 받으며 건강과 회복에 집중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산후조리원을 더 합리적인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거나 공공 서비스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소득층에서도 산후조리 걱정을 덜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체계적인 공공 서비스를 확대해 주기를 바란다.
기말고사 출제로 다음주 한 주는 쉬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