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 공처(京外公處)의 비자(婢子)가 아이를 낳으면 휴가를 백일 동안 주게 하고, 이를 일정한 규정으로 삼게 하라."
- 세종실록 32권, 세종 8년 4월 17일 경진 4번째 기사
임금이 대언(代言) 등에게 이르기를,
"옛적에 관가의 노비에 대하여 아이를 낳을 때에는 반드시 출산하고 나서 7일 이후에 복무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이를 버려두고 복무하면 어린아이가 해롭게 될까 봐 염려한 것이다. 일찍 1백 일 간의 휴가를 더 주게 하였다. 그러나 산기에 임박하여 복무하였다가 몸이 지치면 곧 미처 집에까지 가기 전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다. 만일 산기에 임하여 1개월 간의 복무를 면제하여 주면 어떻겠는가. 가령 그가 속인다 할지라도 1개월까지야 넘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상정소(詳定所)에 명하여 이에 대한 법을 제정하게 하라."
- 세종실록 50권, 세종 12년 10월 19일 병술 6번째 기사
세종 8년, 세종은 관노비가 아기를 낳으면 휴가를 백일 동안 주게 하였다. 4년 후에는 산전 한 달의 휴가를 추가하였다. 조선시대의 노비도 출산휴가를 130일을 받은 것이다. 물론 이것이 철저히 지켜졌는지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나 600여 년 전의 남성인 지배층의 눈에도 피지배층 산모의 출산 휴가로 산후 100일 정도, 산전 한 달 정도의 기간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고, 이에 따른 법 제정이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이다.
2025년 현재, 법적으로 보장된 여성의 출산전후 휴가일은 90일이다. 정확히 아기가 언제 나올지 모름에도 출산 후 45일을 확보하여 출산휴가를 내야 한다. 다태아의 경우에는 120일이지만 이 경우에도 조선시대 관노비의 휴가보다 짧다. 대기업 중에는 출산 휴가 90일을 영업일로 90일을 인정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90일을 이어서 사용할 것이므로 여성 노동자는 출산을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를 앞두고 출산휴가를 쓸 수 있다. 산후조리를 위해 대개의 경우 산전 한 달, 산후 두 달 정도를 출산휴가로 사용하는 것 같다.
"경외의 여종[婢子]이 아이를 배어 산삭(産朔)에 임한 자와 산후(産後) 1백 일 안에 있는 자는 사역(使役)을 시키지 말라 함은 일찍이 법으로 세웠으나, 그 남편에게는 전연 휴가를 주지 아니하고 그전대로 구실을 하게 하여 산모를 구호할 수 없게 되니, 한갓 부부(夫婦)가 서로 구원(救援)하는 뜻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 때문에 혹 목숨을 잃는 일까지 있어 진실로 가엾다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사역인(使役人)의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남편도 만 30일 뒤에 구실을 하게 하라."
-세종실록 64권, 세종 16년 4월 26일 계유 3번째 기사
세종은 관비에게 출산휴가 130일을 주도록 하고, 4년 뒤에 그 남편에게 30일의 휴가를 준다. 아기를 낳은 여성 혼자 아기를 돌보며 산후조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종은 산후조리를 잘못하면 여성의 생명이 위태로운 일도 있었음을 간과하지 않았다. 이것이 애민 정신인지 노동력의 손실을 막기 위함인지 알 수 없으나 왕명으로 출산한 산모의 남편에게 한 달 동안 일을 시키지 않도록 한 것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서 산후조리원에 대한 글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산후조리가 산모와 신생아를 위해 몹시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남편이 산후조리를 해주는 문화가 정착하지 못하였다. 최근에는 산후조리원을 가거나 산후도우미가 집으로 찾아오는 문화가 생기게 되었다. 좋은 점이 많지만 아빠가 빠진 산후조리는 아빠가 신생아 돌보는 일에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후에 부부간의 가장 큰 갈등 요소가 되며 개인적으로는 높은 이혼율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우리 남편은 10일의 휴가를 분할하여 출산일부터 5일의 휴가를 썼고, 산후조리원을 나와서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계신 주에 5일의 휴가를 썼다. 분할해 휴가를 쓴 이유는 신생아를 돌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것이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난 후에 우리가 생각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에 있으면서 산후우울증이 왔고, 남편이 옆에 있으면 좀 나을 것 같았다. 실제로 출산 직후에는 거동이 조금 불편하기도 하였다. 그나마 남편이 출퇴근이 가능한 조리원에 있어서 저녁에는 얼굴을 보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런 조리원이 거의 없었다. 남편의 출퇴근이 불가하여 혼자 조리원에 있었다면 산후우울증이 더욱 깊어졌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남편의 출산 휴가 기간이 더 길었다면 혼자 감내해야 하는 일들이 줄었을 것 같고, 손목도 좀 덜 아팠을 것 같고, 우울증도 덜했을 것 같다.
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0.778명이다. 정부도 언론도 출산율이 너무 낮다고 빼액 빼액 소리친다. 출산율의 위협이 없던 조선 시대에도 출산한 노비에게 130일의 출산휴가를, 그 배우자에게 30일의 출산휴가를 주었는데 출산율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가고 있는 이때에도 여성의 출산전후 휴가일이 90일, 배우자 출산휴가는 10일(출산 후 90일 이내 분할 1회 가능)이다. 배우자 출산휴가가 올해부터 20일(출산 후 120일 이내 분할 3회 가능)로 확대 예정이고, 이미 시행하는 회사도 있다는 점은 그나마 조금 고무적인 일일 것이나 역시나 확대 시행되는 정책마저도 조선시대 노비만도 못한 출산휴가 정책이라니 몹시나 애석한 일이다.
모든 산모가 만삭 때 너무 힘들다. 8개월째만 되어도 숨 쉬는 것조차 답답하여 잠을 자기가 어렵다. 아기를 낳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지만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면서 숨 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이제는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출산 후의 아픔을 모른 채...). 게다가 나는 양수가 많고, 배도 큰 편이라 수업을 하느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꽤 힘들었다. 교사가 유산율이 높은 직업 중의 하나라는 이야기가 실감이 되었다. 꽤 많이 움직이고, 오래 서있는 직업이라 유산율이 높다는데 아마도 교사보다 더 오래 서있거나 더 많이 움직여야 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아기 하나를 임신해도 이렇게 모든 장기가 눌려 압박스러운데 다태아를 임신한 경우에는 정말 움직이는 것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예정일을 중심으로 45일을 남겨두고 출산휴가를 쓸 수밖에 없었다. 수능까지 2주만 더 버티려고 하였으나 정말이지 가만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대중교통 이용도, 운전도 모두 힘들어져 출근도 너무 큰 미션이 되어버려 나의 예상보다 출산휴가를 빨리 쓰게 되었다. 그로 인해 눈총도 많이 받았지만 제대로 수업이 되지 않아 어쩔 수는 선택이었다. 출산휴가 3개월이 너무 짧고, 산전에 쓸 수 있는 기간에 큰 제약이 있는 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글이 길어서 1, 2, 3부로 나누어 올립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