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나 판다는 큰데 출산할 때 새끼는 너무너무 작아요. 아기가 그렇게 작든지 아니면 송아지나 사슴처럼 낳고 얼마 안 있어서 걸어 다니면 좋을 텐데 사람은 그렇지가 않아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동료들에게 수다를 떨며 이야기했다. 인간은 아기를 혼자 낳고, 혼자 기르지 못한다. 인간은 뇌가 계속 커지면서 진화했기 때문에 아기의 머리가 엄마의 산도보다 더 큰 거의 유일한 동물일 것이다. 때문에 아기를 낳고 산모의 회복도 더디고, 아기는 뇌가 많이 발달하고, 다른 신체 부위는 작게 나오기 때문에 혼자 일어서 걸으려면 태어나서 거의 1년은 커야 한다. 그것도 겨우 아장아장 걷는 정도이지 사슴처럼 멋지게 뛰어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성인이 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갓 태어난 아기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젖을 먹는 것, 변을 보는 것, 숨을 쉬고 우는 것 정도 밖에는 없다. 아주 많은 돌봄이 필요하다.
산도보다 큰 아기를 낳은 산모는 꽤 오래 산후조리를 해야 한다. 우리 조상들이 잡은 가장 최소의 날짜가 삼칠일, 즉, 3주다. 3주 동안은 누구도 아기를 낳은 집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기와 산모가 모두 매우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산후조리가 필요한 산모를 돌보고 아기도 돌보아야 할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산모의 출산휴가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출산휴가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배우자 출산휴가가 일주일이었던 때에도 아빠들은 출산휴가를 마음 놓고 쓰지 못했다. 학교가 그나마 좀 나은 곳이라고 하는데 사립학교 남자 선생님들은 아내가 아기를 낳고 고작해야 출산 당일 혹은 당일을 포함해 이틀 정도를 눈치를 보며 쉬었다. 직장 동료들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역시 아기는 엄마 혼자 낳는 일인 거 아닐까. 아빠도 얼마나 아기와 아내 옆에 있고 싶을까. 산모는 얼마나 남편이 필요할까...'
이런 생각을 하며 역시 이 땅에서 아기를 낳는 것은 별로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일찍 다시 나오셨느냐고, 그래도 출산 휴가가 일주일인데 일주일을 다 쓰시지 그러느냐고 했더니 보강 들어가는 선생님들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동료가 아기를 낳아 너무너무 축하하는 마음에 일주일에 몇 시간 보강 들어가는 것이 선생님들은 그다지도 싫었던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았을 것인데 역시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일부의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과 문화는 아기 아빠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했을 것이다.
배우자의 출산휴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와 정책 때문에 산후조리원이 등장했다. 비싼 산후조리원 비용만 생각하여 우리나라 여성들만 꼭 유난을 떤다는 아픈 글들을 많이 읽었다. 아니다. 우리나라 여성들만 유난을 떠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정책과 출산 가정을 대하는 문화가 경제 수준이나 의식 수준에 비해 훨씬 낮기 때문인 것이다. 모든 책임을 출산하는 당사자에게 돌리기 때문에 출산하는 가정에서는 산후조리를 위해 많은 비용을 들이는 등 많은 부담을 지게 되었다. 저출산 문제는 젊은이들의 이기심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도록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문제인 것이다.
아빠도 출산휴가를 적어도 3개월은 받아야 하지 않을까? 산모가 아기를 낳고 혼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비싼 산후조리원에 며칠이나 있을 수 있을까? 산후조리원도 못 가고, 친정 엄마가 없는 사람은 누가 미역국을 끓여준단 말인가? '노비보다 못한 출산휴가라니요' 시리즈는 이런 생각에서 시작이 되었다. 산모 본인의 출산휴가도 너무 짧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배우자의 출산휴가는 더욱 아쉬웠다. 남편도 아기를 오롯이 돌보고 싶어 했지만 10일의 휴가를 마치고 금방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올해부터 배우자 출산휴가가 20일로 확대되어 다행이긴 하지만 조상들이 산후조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삼칠일에도 못 미치고, 1편의 글에 나오는 세종 대의 공노비의 휴가 기간인 한 달에도 아직 많이 못 미친다. 조선 시대 사람들만큼도 출산 가정을 배려해주지 못하는데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겠나. 정책이 변화하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느낌이다.
배우자의 출산휴가가 최소 한 달만 되어도 산후조리원은 선택의 문제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아기 아빠가 신생아를 한 달 정도 돌볼 수 있다면 가정 안에서의 불화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문화는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육아를 누가 담당할 것인가, 나의 인생은 어디로 갔는가, 경력 단절을 어떻게 해결해 줄 것인가 등등의 가정 내의 문제들은 사실 사회 문제이고, 정책 문제이다. 출산과 육아 문제를 오롯이 가정에서 해결해야 할 일로 치부해 버리면 출산율은 계속 떨어질 것이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아빠도 함께 있어야 하고, 아빠가 밤새 아기를 돌보아야 한다는 인식 변화와 정책적 지원 없이 출산율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배우자의 출산휴가와 육아 시간이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