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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럼 대신 키보드 Oct 22. 2023

밝은 아이,

구김살이 없어 보이는 사람

앞에 내가 자주 일했던 플리마켓 단기 아르바이트에서 친해진 사람들 중, 구김살이 없는 항상 맑은 사람을 만났던 적이 있다. 물론 사람은 장기간 지켜봐야 아는 거라고 하지만, 뭔가 조금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느낌의 러블리한 분위기가 있었다. 성격적으로도 꼬인 것이 없는듯한 부드러운 성격이었고, 아마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인간적인 호감을 떠나서 이성적으로도 조금은 호감이 있었던 거 같다. 그 나보다 3살 어렸던 그 친구는 내가 일하는 곳 바로 뒤편에서 의류가 아닌 추운 겨울에 사용하는 머플러나 장갑, 비니를 판매하는 브랜드에서 일을 했다. 그 아이는 일할 때 항상 그 브랜드의 빨간색 비니를 쓰고 일을 했었는데, 워낙 강렬한 색상의 비니이다 보니, 그곳으로 지나가는 손님들은 빨간색 비니를 쓴 그 친구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연히 대화를 하다가 친해졌고, 점심 시간대가 맞아서 같이 맛있는 카레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조금은 얌전하면서 조용한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큰 주제의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재밌게 말을 하는 능력이 있는 반전이 있었다. 가장 재밌게 들었던 이야기들은 본인이 다닌 고등학교 시절에 굉장히 다이내믹한 사건들이 많았었는데, 이야기를 너무 재밌게 해 줘서 시도 때도 없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르바이트가 끝날 무렵, 자기는 단기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미리 알아봐 둔 게 있다고 필요하면 나 보고도 하라고 알려주었었다. 어차피 그때 나도 플리마켓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추후에 계획된 플리마켓 일정이 없었기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야 했다. 그래서 나 또한 그 아르바이트에 지원을 했고, 같이 콜센터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처음에 3일 정도는 실전에 투입되기 전 교육을 받았는데, 긴 내용을 압축해서 3일 만에 알려주다 보니 무슨 말인지도 이해를 못 하고 지루한 교육 시간 동안 대부분의 교육을 받으러 온 사람들은 록페스티벌에 온 거 마냥 머리를 앞뒤로 헤드뱅잉을 하면서 졸기 바빴다. 그러고 나서 3일의 교육이 끝나고 친구끼리 아니면 아는 사람끼리 일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기에 같은 자리에 배치받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이름을 같이 적어서 제출하라고 했는데, 자리는 오히려 멀리 떨어트려 놓고 점심 식사만 같은 시간대로 배정해 주었다. 출근하자마자 쉬도 때도 없이 벨이 울리는 그곳은 상당히 감정적으로 상담원들에게 윽박을 지르는 사람들이 많아 처음 갔을 때는 감흥이 없었던 전화벨은 나중에는 사람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공포의 벨 소리가 되었다. 혼자 일하러 갔었으면 며칠 일하지 않고 관둘 수도 있었겠지만, 같이 일하는 그 친구가 있었기에 적응하기 전의 초반의 당황스러움과 어려움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업무 시간보다는 아무래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점심시간때와 퇴근 후의 시간들이 재밌었다. 


어느 날처럼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으러 갈 일이 있어서 ○○스퀘어 내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이다. 평소처럼 뭐를 먹을지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로부터 의외의 말을 들었다. 

"근데 나 오빠랑 같이 점심 먹는 거 아니었으면, ○○○○ 가서 점심 먹었어."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니까 이 친구의 말은 나랑 점심 먹을 때 항상 보통 비싸도 9000원~1만 원 이하의 점심을 항상 먹었었는데, 나만 아니면 자기는 한 끼에 2만 원 하는 더 맛있는 곳에 가서 먹었을 거라는 뜻인 거. 최저 시급을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와서 시급보다 훨씬 비싼 음식을 사 먹는다는 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전에 이야기를 간간이 나누었을 때도 분당에서 태어나 쭉 분당에서 사는 그 친구는 소비하는 생활 수준이 최소 중산층의 생활이긴 했다. 자라온 환경이 많이 다르구나 하고 알고는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뭐 나보다 어리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일이 없었던 거처럼 점심을 같이 먹고 평소처럼 퇴근길에 대화를 하다가 헤어졌다.


그렇게 아르바이트 마지막날이 다가왔을 때, 마지막 인사를 헤어지면서 했었다. 빈말이라도 "연락할게~"라고 하는 말에 그 친구는 "응~ 연락해~"라고 받아주기는커녕 단지 웃으며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다. 그 이후에도 오가는 짧은 연락들은 있었지만, 오는 연락들은 직접 만나서 즐겁게 보냈던 시간과는 반응이 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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