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탐 조졌어"
신호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학생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시험을 치르고 일찍 귀가하는 중학생들인 것 같았다. 꽤나 진지한 목소리였지만 내게는 그 목소리가 퍽 귀엽게 들렸다. 그러다 괜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신호등이 바뀌기 전까지 잠시 그 말의 무게를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이미 어른이 된 나는 저 말을 귀여운 학창 시절의 추억 정도로 듣고 있지만, 지금 저 말을 하는 그의 마음은 얼마나 착잡할까. 그때는 사탐 점수도 마치 인생의 전부인 것 같이 느껴지는 때이니까.
학창 시절 나는 성실했지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은 시험 때마다 내게 ‘넌 더 잘하는 아이인데 이번 시험에 실력 발휘를 못 한 것 같다’라고 말해주었다. 그건 내가 수업시간에 졸지 않고, 숙제를 열심히 하고, 자습시간에는 복습과 예습을 철저히 하는 훌륭한 이미지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내게 숨겨진 실력이 있을 걸로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비밀의 실력은 내게 없었다. 꽤 열심을 부려야 중간 이상 정도의 석차가 나왔다.
선생님들은 나를 되게 아쉬운 인재로 생각했다. 반면 나는 실현 가능한 꿈만 꿨다. ‘32명 중에 13등이면 꽤 잘한 거 아닌가? 다음 목표는 12등으로 잡아야지’, ‘이번에 3등급 맞았으니까 다음엔 2등급 맞아야지’, 이런 정도였다. 최근 상담시간에 성격유형 검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욕구 중 가장 낮은 것이 ‘성취욕’이라고 한다. 나는 왜 모두가 경쟁해야 하는 건지 납득하지 못했고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꾸준히 하니 다행히 성적은 올랐다. 입시를 준비하던 고3 시절, 학생부를 봐주던 학교 선생님들이 나처럼 스토리 만들기 좋은 성적표도 또 없을 거라고 했다. 당시 수시전형의 자기소개서 1번 문항은 '역경을 극복한 경험에 대해 쓰시오'였다. 나에겐 어필할 게 많았다. 타국에서 현지 학교에 다니느라 중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한국 고등학교에 편입한 이후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해당 내용을 따라잡아 성적을 올렸다는 완벽한 인과였다. 애매한 성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던 건 노력뿐이었다.
다행히 자기소개서 반응이 좋았고, 면접관들은 성적을 올린 경험에 대해 물어왔다. 나는 준비했던 대답을 줄줄 읊으며 대학 면접을 다녔다. 그런데 딱 한 사람, 내게 특이한 질문을 한 면접관이 있었다. 보통 면접관들은 어떤 식으로 공부했는지, 공부의 방법에 대해 물었지만 이 면접관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타국에서 얼마나 많이 힘들었어요. 부모님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났다. 내 자기소개서를 읽은 선생님과 면접관 누구도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해준 적은 없었다. 그냥 ‘열심히 했구나’, ‘대단하다’ 정도의 감상평이었다. 그는 유일하게 나의 ‘빈칸’에 관심을 가져 준 사람이었다. 자기소개서에는 쓰지 못한 속상함과 어려움의 빈칸 말이다.
바보같이 울게 되어 면접을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운 좋게 그 면접에 붙어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4년간 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그 면접관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나중에 만난다면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만 담아서. 그 질문은 내 학창 시절의 마침표를 찍는 것 같은 말이었으니까.
“공부하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어. 힘들었겠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오은영 박사님이 매일 부모들에게 시키는 흔한 말이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에게 이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다.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때 “잘했어”라는 칭찬을 오히려 더 쉽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사탐을 조졌다는 그 친구에게라도,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고 싶다. 공부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지? 수고했어.
그리고 나에게도. 수십 개의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탈고했던 나에게. 비록 모조리 탈락했지만 수고했어. 조져도 괜찮아. 사람들이 나의 '빈칸'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그 노력을 알아. 조져도 괜찮다. 이젠 괜찮을 것 같다.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