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사이 가위에 2번 눌렀고 지진이 나는 꿈을 꿨다. 잠에서 깨고 난 뒤에도 지진은 마치 실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했다. 휴대폰을 열어 검색창에 ‘서울 지진’이라고 쳐봤다. 관련 내용은 없고 웬 블로그에 ‘지진 나는 꿈 풀이’라고 적혀 있는 글이 있어 클릭을 했다. 좋은 꿈이라는 사람도 있고 운이 안 좋다는 사람도 있고. 역시 꿈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아침에 나갈 채비를 하면서 서울에 지진이 나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했다. 아마 모두가 혼비백산이 되고 온 나라가 뒤집힐 거다. 포항에서 지진이 났을 땐 수능이 일주일이나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렇게 촘촘히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은 오죽할까.
나는 포항에서 잠을 잘 때면 지진 나던 날을 꼭 한 번씩 생각한다. 강의동 본관 계단을 오르는 나의 모습. 손에는 노트북을 들고 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데 갑자기 아득한 저 멀리 어딘가에서 ‘쿵, 쿠궁’ 소리가 들린다. ‘뭐지?’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갈 때쯤, 미친듯이 양 옆으로 진동하는 건물. 전구가 반짝 반짝, 천장이 무너지고 석회질이 내 머리 위로 후두둑 떨어진다. 손과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몸이 놀라서 움직여지지 않는다. 계단을 빠르게 내려갈 수도 없다. 가까스로 1층에 내려가니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교수, 학생 너나 할 것 없이 하얗게 질린 얼굴. 갑자기 먹통이 되어 버린 휴대폰. 그 뒤로도 쿵, 쿠궁. 땅 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괴물의 발자국 소리가 계속 들린다.
땅이 흔들린다는 건, 굉장히 근본적인 것이 흔들리는 일이었다. 포항에서 5.8 규모의 지진이 나던 날 나는 아주 억울한 오해를 받고 있었다. 우리 학교는 학부 대신 팀 제도를 운영했고, 나는 그 팀의 회계를 맡았다. 지진이 나기 하루 전, 나는 어떤 팀 원 한 명이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남자 팀원들에게 빼빼로데이를 맞아 좋은 선물을 주고 싶어서 예산금액을 초과해 선물을 샀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애인에게도 안 주던 빼빼로를, 굳이 관심도 없는 남자들에게 줘야 할 이유가 뭐람.
여하튼 황당한 소식에 나는 팀모임 전날 밤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지금까지 회계 내역을 영수증까지 첨부해 PPT로 만들어 나의 결백을 주장하고자 했다. 그날 강의동 본관 계단을 오른 것도 팀모임 시간에 내가 만든 자료를 팀원들에게 공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와중에 지진이 난 것이다. 순간, 내 머릿속에 있던 모든 생각들이 화르륵 다 타버리는 것 같았다. 지진이 난 이후 대피를 하면서 천당과 지옥을 수십 번 오가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날 오해했던 그 친구의 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목숨 앞에 뭣이 중한가.
그렇게 빼빼로데이 사건은 파리똥만큼 작은 일이 되었다. 그 친구는 그 후로 내게 빼빼로데이에 관한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고 나 역시도 따로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기분은 별로였지만 지진이라는 큰 사건 앞에 나도 그 아이도 괜한 머쓱함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나는 ‘지나면 별 일 아니게 될 일’을 떠올릴 때, 이 빼빼로데이 사건을 종종 생각한다. 물론 모든 일을 작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게 내 존재를 위협할 만한 사건은 아니니까. 적어도 땅이 흔들리는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