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의 삶은 나를 바쁘게 만든다. 근데 문제는 헛바쁘다는 거다. 사람으로 꽉 찬 버스에 몸을 싣고 도시의 소음을 듣고, 마트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하며 매연 냄새를 맡는 일은 피곤하다.
도시의 바쁨에 기가 빨릴 때쯤이면 난 더 이상 인간이라는 존재들과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게 되어버린다. 얼른 침대에 누워 <어린왕자> 오디오북을 들으며 잠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하다.
사랑을, 사람을 잃어버려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숨 한 번 크게 들이마셨을 때 맑은 공기 풀내음 촉촉한 하늘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싶다. 공허한 바쁨이 아닌 알찬 여유를 느끼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면 다시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에서의 나는 정직한 시간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채소를 씻어서 다듬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재료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간을 맞추는 데에는 시간과 정성이라는 게 필요하다. 그걸 다 먹고 정리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는 자꾸 그 시간을 '쓸모없는 시간'으로 생각해서 어떻게든 단축시킬 방법을 찾는다.
퇴근과 동시에 나와 함께 집에 도착할 배달음식을 고르고 밥을 먹을 때도 다른 일을 한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해놓고 잠에 들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집은 난장판이 되어 있다.
집을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고 밥을 해 먹는 아주 정직한 시간들로부터 나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나는 알차게 바쁘고 싶지 헛바쁘고 싶진 않다. 적어도 도시로부터 기를 잔뜩 빨린 채로 모든 것을 귀찮게 여기는 회사원이 되고 싶지는 않다. 매우 바쁘게 사는데 스스로에게 게으르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지는 않다.
물론 서울에 온 건 잘한 일이다. 오지 않았다면 어디선가 서울에서의 삶을 그저 동경하고만 있었을 것이다.
서울에 온 지 벌써 2년 6개월이 되었다. 그래서 난 이제 미련 없이 서울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5평짜리 집은 나를 담기에 너무 비좁은 공간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최근에는 책꽂이에 자리가 없어 패드로 책을 사기 시작했다. 난 사르륵사르륵 종이 넘기며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서울에서 꽤 좋은 일자리를 잡아 일하게 된다 하더라도 지금 사는 동네에서 나만의 서재가 있는 집을 갖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10년 뒤, 20년 뒤를 기약하며 사는 짓은 못한다. 지금 내가 채워지지 않으면 그때의 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는 도시 뷰보다 푸릇푸릇한 나무를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도시를 떠나는 시점을 노린다.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도시에 살고 싶지는 않다.
속이 꽉 찬 뜨끈한 밥을 지어먹고 싶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은 고향에 왜 왔냐는 물음에 "배가 고파서"라고 답했다.
밥다운 밥을 먹고 싶다. 내가 먹을 양식을 스스로 요리하고 싶다. 누가 차려주는 게 아닌.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텃밭을 가꾸고 싶다. 씨앗을 심고 물을 뿌려서 내가 매일 사 먹는 방울토마토와 양파, 대파 같은 것들을 키우고 싶다. 발에 흙을 잔뜩 묻히고 싶다.
정직한 시간을 견디고 버티고 싶다. 열매를 맺으려면 씨앗을 뿌리고, 햇빛을 보게 하고, 물을 주고 계속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짜잔 하고 나타날 내 모습을 바라는 건 괴로운 일이다. 버티고 견디고 기다리는 나를 인정하게 해 주세요. 그 시간들이 모여 나를 만들어 갈 거라는 걸 부디 깨닫게 해 주세요.
이 도시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는 나는, 그 정직한 시간에 기대를 걸기가 점점 힘에 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