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빠빠리 Sep 20. 2024

해가 진 자리

어둠속의 그리움

해가 진 자리


“해가 자살, 아니 아니, 스스로 삶을 포기했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던 건지 죽는 마당에 유서처럼 쓴 것이 서른 장은 넘었다던데 그 내용이 뭔지 아는 친구들이 없어. 가족들이 무슨 비밀을 숨기 듯 장례도 치르지 않았대.  아니, 자기가 뭐가 부족해서 죽냐. 너처럼 조실부모 한 애도 씩씩하게 살아가는데 , 어이없지 않니?  그 애 원래 어렸을 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했긴 했지. 또래 애들이랑 잘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만 사차원에 사는 아이 같았잖아. 사람이 너무 똑똑해도 문제인가 봐. 가만히 생각해 보니, 너와 키가 크고 잘 생겼던 애,  누구였더라… 맞아 종수. 그 애가 너네 둘 외엔 대화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아니지, 아이들이 그 애랑 어울리려 하질 않았던 거 같아. 그런 것들이 상처로 남았던 걸까, 외롭고 우울해지는 병으로 말이야.”

친구 희수가 결혼 소식을 알리면서 곁가지를 붙이듯 해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희수는 자살이라고  이미 말한 뒤, 그 말에 자신이 놀란 듯 ‘삶을 포개했대’로 고쳐 말했다.

“ 너 못 올 거란 거 알아.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는 것도 어려울 테고 비행기값만 해도 얼마야. 그렇게 멀리 가 있는데 미안해서 오란 말 못 하겠다. 학교는 이제 졸업한 거야? 너 그곳에 간지가 벌써 5년이 지났네.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가서 대학까지 다니고, 너 독종이다. 정말 너처럼 기댈 곳 없는 애도 잘 버티며 살아 가는데 해는 도대체 … 나는 해랑 친하지 않았아도 그 애가 죽었다는 소식 듣고 기분이 이상해지더라. 어차피 천천히 올 죽음인데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다는 거 정말 보통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스스로 한테 그런 엄청난 형벌을 줄 수 있는 거니?.”

희수는 결혼 날짜와, 사진촬영, 그리고 신혼여행에 대해 삼십 여분을 떠든 후 전화를 끊었다.


미미하게 천둥소리가 들려오고 회색빛 하늘이 금방이라도 굵은 빗방울을 뿌릴 듯 어두웠다. 스물일곱의 해는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떠났다. 창가에 서니 비가 후드득 유리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엄마,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던 날도, 지붕 위에 떨어지는 우박처럼 큰 소리를 몰고 소낙비가 내렸다. 어두워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다가 마루의 미닫이 문을 닫는 순간, 후드득 장대 같은 소낙비가 쳐들어 왔다. 두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날 동네 사람들은 내가 실성 한 사람 같다고 했다.

“저 어린것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저럴까. 눈물 한 방울 없이 서 있는 것 좀 봐. 불쌍해서 어쩌나.”

그때처럼 눈물은 나지 않았다. 창가에 커튼을 치고 소파에 새우처럼 웅크려 누웠다. 잠이 오는 듯하다가, 유년 시절 마루에서 꾸던 꿈을 기억해 냈다. 마루에서 꾸는 꿈들은 늘 나를 불안한 결말로 이끌었었다. 재회의 기회조차 없는 상실감을 예견이라도 한 듯,  그때의 악몽들은 기억 저편 가장 맨 끝의 경계선으로 나를 몰아세웠다.


빗소리만 들리는 방안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마지막 학기 이수과목 리포트를 내야 하는데 머리가 심난했다. Club 27, 요절한 천재들의 이름과 해를 불러 보았다. 나는 커트 코베인의 CD를 찾아 오디오에 넣고, 볼륨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비트가 강해질수록 손이 떨렸다. 노래하는 커트 코베인을 따라 크게 소리쳤다. 나도 이제 소멸해 버리고 싶어. 한 줌의 뼈로, 한 가닥의 연기로 사라져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아니, 만약 갈 수만 있다면, 고향에서 보낸 행복한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쳤다. 모두가 살아 있던 그 시간으로.


스물일곱의 해는 사라졌고, 스물일곱의 나는 지쳐 있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파편들을 머릿속에 모아 보았다. 해는 내 모든 기억 속에 살아 있었다. 슬픈 기억 속에도, 행복한 기억 속에도.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1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내 기억 속에서 해는 매일 만난 것처럼 또렷이 살아 있는 아이였다.


내가 자주 걷던 저수지 둑. 그 둑길 옆으로 파마머리처럼 구불구불한  골짜기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그 길 끝자락, 마을 어디에서도  시선이 닿지 않던 곳에서 걸어 나오는 해를 보고 도대체 그곳에 뭘 보러 가는 거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곳엔 신비한 세계가 있어. 숲 속 생명들과 대화를 나누는 거야. 사람들에게 하지 못하는 말들.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으면 나는 숲에 완전히 잠식돼. 평온해지는 거야. ”

우리는 그때 열두 살, 국민학교 5 학년이었다.  해의 대답은 너무 진지했지만, 내 머리로는 닿을 수 없는 이상한 세계에 대한 해의 상상력에 웃음이 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해의 자살소식을 들은 후에서야 나는 그 아이가 오랫동안 죽음을 준비해 왔다는 걸 직감했다.  


이전 03화 해, 천재로 태어난 아이(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