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의 일상
빗길에 미끄러진 대형 트럭이 부모님이 타고 있던 차를 덮쳤을 때,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엄마는 이틀간 사경을 헤매다 끝내 운명을 달리했다. 나는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엄마가 운명하기 직전까지 내 이름을 불럿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모가 왜 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는지 원망했다. 사람들은 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고,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외로움의 깊이를 불쌍히 여겼다. 어떤 사람들은 사고 보상금에 유산이 정리되면 충분히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나는 무중력상태로 유영하는 듯 했다. 내 육체는 모든 감각을 잃은 듯 마비됨을 느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염려할 기운조차 없었다.
6학년 탐구생활 책이 저만치 책상 밑에 뒹굴고 있었다. 여름방학이 끝났지만, 나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의 장례식에 온 담임 선생님은 나를 안고 한참을 울고 난 후, 일주일 뒤에 학교에서 보자고 말했다. 나는 그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장례식을 마치고 보름이 넘도록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버지의 냄새가 남아 있는 장롱 속 옷들 사이에 웅크리고 잠들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부모님의 손때가 묻은 물건에 얼굴을 비비고, 허기가 느껴지면 냉장고 안에 엄마가 남긴 음식을 허겁지겁 손으로 집어 먹었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마치 끝나지 않을 긴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 중학교 마칠때까지는 우리 집에서 지내라. 네 이모는 너를 데려 가고 싶어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 집 형편이 널 키울 정도로 좋지 않잖니. 어차피 고등학교는 도시로 나가야 하니, 네 이모한테는 그 때 너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
같은 동네에 살던 숙부가 우리 집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숙부가 장롱을 열어 고인들의 옷을 마당에 내 놓았다.
“이제 모두 태워야 한다. 불쏘시개를 만들어라.”
숙부는 마루에 앉아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 집이 이렇게 있는데 왜 태워야 해요? 그대로 두고 싶어요, 라고 나는 숙부에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숙부는 미동도 하지 않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신문지 몇 장을 모아 불을 붙였다. 엄마의 빨간 실크 블라우스가 서서히 타들어 갔다. 타오르는 빨간 블라우스의 연기 너머로 골짜기를 향해 걸어가는 해가 보였다. 나는 그곳을 향해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골짜기 초입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숨이 가빠오고, 마치 온몸의 뼈가 부서진 듯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았다. 집을 바라보니 눈물이 흘렀다. 숙부가 태운 옷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는 얼마간 하늘로 피어오르다 이내 공기 중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엄마, 아버지…" 나지막이 불러 보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깊은 쓸쓸함이 밀려왔다. 열세 살의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쓸쓸함이었다.
“너무 오래 울었어. 이제 곧 어두워지면 습지에서 모기 떼가 몰려들 거야.”
언제 왔는지, 해가 내 뒤에 서 있었다.
“모두 타버렸어. 연기도 다 사라졌어. 오랫동안 탈 것 같았는데 순식간이더라. 내가 좋아하던 엄마의 빨간 실크 블라우스도 이제 없어.”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해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어..." 하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멜로디였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점차 내 눈물은 멈췄다.
“두려워하지 마. 모두가 겪는 이별을 넌 조금 일찍 한 것뿐이야. 그동안 받아온 사랑으로 살아가면 돼. 이제 학교도 나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해. 숨만 쉬면 살아지니까.”
해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철없어 보였던 해의 어깨가, 막 떠오른 달빛 아래 우뚝 솟아 있는 것처럼 커 보였다.
나는 빈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해는 나를 숙부의 집 대문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일은 학교에 가자. 아침에 너랑 같이 걸어 가 줄게.”
국민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나는 줄곧 한 시간 이나 되는 등하교길을 걸어다녔다. 뼈가 단단해지려면 많이 걸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 때문이었다. 엄마는 혹여 내가 버스나 지나가는 경운기라도 얻어 타면 혹독 할 만큼 화를 냈다. 버스에서 사람들 틈에 부딪쳐 골절이 생기고, 경운기를 타다가 쇠덩이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또 골절을 당한 사건 이후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꼬박 걸어 다녀야 한다고 당부했다. 동네 어귀 느티나무까지 늘 나를 배웅해 주던 엄마. 아름드리 느티나무 앞을 지나면서 엄마가 그리워졌다. 두팔로 느티나무를 안아 보았다. 내 팔안에 잡히지 않는 느티나무 뒤편에서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내 밀것 같았다. 저만치 앞에서 걷던 해가 나를 돌아보더니 빨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엄마 ,안녕. 나는 느티나무를 감쌌던 팔을 풀고 해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