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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빠리 Oct 17. 2024

비밀을 푸는 고백

해의 유서를 읽다

비밀을 푸는 고백 (해의 유서를 읽다)


봄 햇살이 눈부시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너는 아카시아 나무 아래 벤치에 누워 깊은 잠에 빠졌고, 나는 아카시아 꽃 한 묶음을 조심스레 따서 잠든 네 손에 쥐여주었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면, 허둥지둥 일어나 손에 든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교실로 뛰어갈 네 모습을 상상하면서 멀리서 널 바라보았지. 그때 종수가 기타를 들고 네가 잠든 벤치로 다가왔다. 기타 소리가 은은하게 흐르자, 너는 눈을 뜨고 벤치에 앉아  종수가 부르는 '예스터데이'를 듣고 있었지. 부모님의 옷을 태우던 그날, 울고 있는 너에게 내가 휘파람으로 불러주었던 그 노래를 이제는 종수가 대신 불러주는 듯했다. 내가 저런 감미로운 목소리로 너에게 노래를 불러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용한 연주회를 감상하는 둣, 너의 모습이 너무도 행복해 보였고, 그 순간의 너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종수와 너의 대화를 지켜볼 때마다 내 안에 타오르는 질투를 이길 수 없었다. 허무주의에 빠져 냉정하기만 했던 나와 달리, 종수는 늘 다정하고 너에게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였지. 나에게 종수를 이길 수 있는 건 공부뿐이었고, 그래서 우월함을 과시하려 애썼지만, 진심으로 내가 바랐던 건 단 하나였어. 너의 마음속에 남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종수 같은 멋진 사람이 네 옆에서 너의 상처를 달래주고, 너를 지켜주길 바랐다. 그런 역설적인 마음은 성장기 내내 지속되었다.  나는 네 밝은 미소를 어둡게 만들 것 같다는 불안감에 네 곁으로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원하지 않았던 나는 입학하고 나서도 좀처럼 학교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때 살아갈 작은 실타래를 놓지 않게 내 안에 던져준 사람이 너였다는 것을 난 한 번도 너에게 고백한 적이 없었지. 너의 엽서 한 장을 받기 위해 난 얼마나 많은 기대와 실망 그리고 도발과 체념등의 사이를 오고 갔는지 모른다. 그런 잡힐 듯 말듯한 너의 잔상이 힘겨웠던 내 청춘을 이끌었는지 몰라


내 영혼은 죽어 있고, 의미 없는 삶이 계속될 뿐이다. 심장은 격렬하게 떨린다. 그리움 때문인지, 서글픔 때문인지, 혹은 아쉬움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냥 허전함이라고 단정 짓고 싶다. 외로움과 고독이 밤을 지배하고, 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 어둠에 빨려 들어가길 바란다. 이대로 깨어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어둠 속에서도, 너에 대한 기억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을 느낀다. 시간은 너를 나에게서 점점 더 멀리 밀어내고, 우리는 평생 닿을 수 없는 수평선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달려가기만 한다. 신은 인간에게 위대한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갈 삶을 주었고, 그 안에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는 선물도 담아주었다. 마지막으로 너를 만났던 날, 내가 ‘비밀스러운 사랑은 사라지게 마련이다’라고 말했었나. 그 말을 하는 순간, 찬바람 같은 외로움이 내 안으로 밀려왔다. 내 언어는 가면을 쓴 채, 노력하고 쟁취하는 사랑을 찬양했지만, 내 가슴은  터널 같은 어두운 공간에 비밀스러운 애정을 숨기고 있었다. 스스로를 경멸하면서.


우리는 한때 청마와 이영도의 사랑에 대해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했던 해, 너는 청마의 시를 달달 외우고 다녔지만, 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알게 된 후에는 청마의 시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너는 플라토닉 사랑을 핑계로 한 불륜이라며 비판했다. 누구에게든 상처를 주면서 쟁취하는 사랑은 결국 불행한 결말을 맞는다, 고 너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운명의 장난으로 뒤늦게 만난 그들의 사랑을 동정했다. 처절하도록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너는 나를 부도덕한 사랑을 합리화하려는 편향이 있다고 꾸짖었다. 너와의 논쟁은 단순한 사랑의 정의를 넘어서,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 사랑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마다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삶은 지속되지만, 죽음과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소를 탄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며, 그 속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골짜기를 향하면서 바라본 너의 집, 마루에 앉아 있던 너,  긴 머리를 날리면서 자전거를 타던 너의 모습과, 한 바탕의 고통을 겪어 내고도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일어나 웃던 어린 너. 나를 지탱해 준 유일한 희열의 순간들이다. 사랑은 존재하고 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심지어 소리 내어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두 손에 느껴지는 떨림이 올 정도로. 경계가 없는 사랑, 조건과 두려움이 없는 사랑. 언제나 꿈속에서만 그런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다. 꿈은 한계가 없는 법이니까.  나는 이 많은 그리움을 어찌 참고 있는 것인가. 몇 번이나 사계절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꽃이 피고 지는 자리에서 앉아 있으면, 빠르게 돌아가는 계절의 순환을 멈추게 하고 싶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지, ‘아름다움이란 슬픔과 기쁨이 어우러진 경이’라고. 그렇다면 나에게도 그런 아름다운 순간을 향유할 수 있도록, 내가 겪은 슬픔만큼의 기쁨을 나누어 달라고 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해 본다. 나에게도 한 번쯤 무풍의 지대에서 조용히 쉴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낙엽은 바람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 이미 초록빛을 잃고 힘을 잃은 나뭇잎. 그 나뭇잎을 떠나보낸 나무는 자신의 분신을 그리워할까? 아니면 새로운 분신을 품기 위해 기꺼이 무르익은 잎을 바람에 내맡기는 것일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그리움과 애틋함 속에서 나무는 잃어버린 것과 새로운 시작을 동시에 느끼며, 생명의 순환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자연은 끊임없는 상실의 고통과 생성의 결정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찾고, 또 다른 생명을 품어내며 억겁의 세월을 견뎌낸다. 그러나 이성과 존재에 대한 철학을 가진 나는 인간이면서도, 나무보다 열등한 생명력을 지닌 것만 같다. 왜 나는 염세주의에 빠져 아무런 변화를 이루지 못하는가? 또다시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내가 무얼 원하는지 아무도 궁금해하거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내가 무엇인가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에만 감탄한다.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 무섭다. 심오한 내면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았을 때, 그 안에 다시 내가 모르는 것이 튀어나올까 봐 두려운 것이다. 나를 측정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느껴진다. 나의 꿈과 욕망이 현실과는 멀어져만 가는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그리하여 나는 더욱더 혼란스러워지고,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이 더욱 힘겨워진다.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인생은 종신형 같은 감옥살이라고. 이제 난 그 종신형 같은 감옥살이를 끝내려 한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린 존재다. 무기력함을 이겨내기 위해 한국을 떠났던 너도 지금의 내 심정과 같았을까? 내 감정은 파도처럼 높아졌다가 포말처럼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누구에게 내 고통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아무도 내 고통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책을 읽는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책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단지 허영심이었음을 깨닫는다. 어느 것 하나 희망이 되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텅 빈 머리, 떨리는 손, 숨 막히는 심장을 가진 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만 개가 넘는 해변을 찾아 여행을 하고 있을까. 그 여행의 끝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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