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그래봐야 겨우 40년이지만)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인생에서 어떤 사건을 마주 했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주에서도 유년기는 부모 자리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아이의 사주는 부모의 사주와 결합해서 본다. 어린 시절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불가항력인 시간이고 성인부터는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누군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간의 의지라고,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고. 물론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안의 방어기질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저절로 알아졌다. 알아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대부분 살면서 경험한 상처에 의한 것이고, 그 사건으로 트라우마라는 것을 갖게 됐다. 내가 아직까지 그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감정을 흔들고 괴롭히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 확실해졌다. 늘 책임감이 무거웠다. 내가 자라면서 느꼈던 정서적 결핍과 경제적 결핍을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눈치 보는 일 없이, 걱정 없이 자라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내 내면이 아이는 너무 방치한 게 아닐까?
내 내면의 문제는 괜찮은 걸까?
나부터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져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텐데...
내 안에는 아직도 나약한 어린아이가 자라고 있다.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문제를 안고 살고 있다고"
아직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를 먼저 비난하는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내가,
갈등에서 한 번 더 참고 삭히는 내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꽤나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상처는 곪고 언젠가 터지고 만다.
이런 식으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아이뿐 아니라
시간과 이해와 표현을 필요로 하는
내 내면의 아이도 사랑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