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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Dec 07. 2023

너를 보여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왕들이 자꾸만 죽는 나라가 있었다.
그럼에도 왕이 되고픈 사람은 많았다.
모두 자신만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왕이 되자 모두들 당나귀 귀가 되었고, 귀를 감췄다.
왕관이 커서 고꾸라지고, 무게를 못 이겨 허리가 휘었다.
왕관이 떨어져 새끼발가락 뼈가 부러졌다.
부끄러워 수치심에, 슬픔에 빠져 죽었다.
원인을 못 찾아 기가 막혀 죽었다.
화병으로, 심장마비로 죽었다.
깊이 생각하던 444대 왕은 모자를 벗어버렸다.
'에잇, 이깟 귀가 뭐라고.'
그는 천수를 누리고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난 안 될 거야.'

'내가 뭐라고.'

자라는 내내 열등감에 시달리던 나는 너무 불행했다.

누군가 등을 떠밀어 줘도 잘 해낼 수 없었다.

결과가 좋지 않으니 더 겁이 났다.

숨을 수 있는 곳만 찾으면 남들과 비교하며 자꾸만 숨어들었다.

내 작은 방으로, 내 좁은 마음속으로.

상처투성인 나를 내보이는 게 겁났다.


대학시절, 연애 속으로 숨느라 학교생활을 즐기지 못했다.

선후배 관계도, 동아리 활동도 없었다.

연애는 산산이 부서졌고, 대학 생활은 지옥처럼 무너졌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가까스로 논문을 썼다.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책이 세상에 나왔다.

대학원 생활을 하다 보니 돌아가고 싶었다.

돌려놓고 싶었다. 나의 대학을.

대학원 학위를 받고 학과 조교가 됐다.

무너진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해냈다. 사람들과 서로 돕고 나누면서.

학과 후배, 선배, 교수님 모두에게 사랑받은 조교로 남았다.

두려웠던 곳으로 용기 있게 나서지 않았다면 그런 행복은 없었겠지.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아이들 속으로 자꾸 숨었다.

엄마라는 역할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어려운 과제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돌봄 받지 못하고 돌보기만 하는 역할에 나는 쉽게 무너져 내렸다.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났다.

내게 닿은 어려움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운이 좋았던 걸까.

용기와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이 날 지지해 줬다.

현재진행 중엄마라는 역할 속에서도 나의 이름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어떤 불가항력이었을 거다.

나의 성장 속 불행은.

그래도 그중 다행인 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꺾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보니, 나의 쓰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의 다행인 순간들을 발견하는 즐거움, 나를 발굴하는 기쁨으로 오늘도 한 문장씩 두드려본다.

열등감, 상처, 두려움.

나의 온갖 당나귀 귀를 가리지 않고 꺼내어 본다.




당신의 공감과 격려가 오늘도 나를 꽃피운다.

나는, 꺾이지 않은 커다란 꽃이다.

나의 글이 좋은 향기로 전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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