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나는 계획한 바가 있어 방구석 작은 책상에 앉아 하루 12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12시간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자료도 찾고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그러다 갑자기 뭔가 떠오르면 글을 쓰긴 한다. 한 달 가까이 집에서 마늘을 듬뿍 넣은 알리오 올리오만 만들어 먹다 보니 이러다 다시 곰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됐다.
친구가 점심을 먹자고 전화했다. 너무 오랜만인 친구라 반가운 마음에 대충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나갔다. 그런데 식당을 코앞에 두고, 걸려온 전화를 받다가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보도와 도로 사이 계단 하나 정도의 턱이 있는데, 전화를 받느라 보지 못한 것이다. 나는 발을 헛딛어 비 오는 날 차에 깔린 개구리처럼 납작하게 자빠지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멀리서 두 여인이 달려오며 소리치는 것이 아련히 들렸다. “어머, 괜찮으세요?” 이럴 땐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우선이 되어야 마땅한데, 그리하여 장렬히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유유히 걸어가야 마땅한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다정한 두 여인이 나를 일으켜주며 내 롱패딩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손에서는 피가 흘렀다. 물론 액정도 저세상 속으로 산산이.
고맙다는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나왔다. 감동의 눈물 아니고 고통의 눈물. 내 무릎이 내 무릎이 아니다. 구부려져야 걸을 텐데, 감각이 없었다. 캡사이신 덩어리를 입에 물었을 때와 같은 통증이 무릎에서 느껴졌다. 바들바들 떨며 감사 인사를 하고 어찌어찌 친구가 기다리는 식당에 도착했다. 친구는 물수건으로 피가 흐르는 내 손을 무심히 닦고 밴드를 붙여주며 “아이고, 이제 우리 걸음마도 새로 배워야 쓰겄다.” 한다. 친구도 얼마 전 넘어지는 바람에 손목을 다쳐 한동안 치료받았다며.
밥을 먹고 절뚝거리며 주차해 놓은 마트 주차장으로 가는데,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꽃을 팔고 있었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노란 베고니아. 빨간 베고니아는 봤지만 노란 베고니아는 처음 봤다. 노란 잎과 연두 잎이 어우러져 어찌나 싱그럽던지, 친구와 나는 홀린 듯이 서서 베고니아와 눈을 마주쳤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지’라는 유행가 가사가 주문인양 눈이 마주치자 사랑에 빠졌다. 내 눈에 하트가 그려지자 친구는 선물이라며 하나를 안겨주었다. 사랑에 빠지면 뭔 호르몬이 나온다더니, 그것 때문인지 무릎의 통증이 휠 덜해졌다.
모셔온 베고니아를 내 책상에 올려두고 물을 주고 시든 잎을 정리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오른쪽으로 한 컷, 왼쪽으로 한 컷, 얼짱 각도로 한 컷. 아이 키울 때 그랬던 것처럼 사진을 찍었다. 남들 눈에는 비슷비슷한 사진이지만 내 눈에 그 미세한 차이가 느껴져 완전히 다른 사진이지 않은가. 사랑하면 사소한 것이 없다.
넘어진 내 무릎이 접시꽃 크기의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고 베고니아의 노란빛도 더 해갔다. 베고니아는 습기에 약한 식물이라 물을 자주 주면 안 되는데, 바라보고 있노라면 난 매일 물을 주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내 딴엔 사랑이라고 하는 행동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러니 다정도 병인 것이지.
인터넷에 베고니아를 검색해 보니, 베고니아를 키우는 사람들의 사진과 글이 보였다. 겨우 내 신경을 못 쓰고 베란다 한쪽에 세워놨는데 꽃을 피웠다는 글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신경 쓴다고 물을 자주 줬으면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물을 주지 않아 살아남은 것 같다는 글이 사진과 함께 있었다. 나는 무슨 커다란 깨달음이라도 얻은 양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 깨달았다. 무릎이 아직 아프다는 사실을.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아들 둘이 아직 품 안에 있다. 이제 다 컸으니 스스로 길을 정하도록 기다리고 지켜봐 주면 되는데 문득문득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있다. 내가 뭘 못 해줘서, 신경을 덜 써줘서 아이들이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일만 한다고 아이들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 다소 헤매고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길을 찾길 바라는 심정으로 무심한 척할 뿐이었는데.
베란다 한쪽에 세워 둔 베고니아가 꽃을 피웠다는 말이 위안이 되었다. 다시 꽃이 필 수 있도록 가을까지는 정성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니 튼튼한 뿌리를 가질 수 있었을 테고 혹독한 겨울에도 스스로 꽃을 피워냈을 것이다. 식물도 이러할진대, 내 막막한 불안감을 이 여린 아이가 달래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나는 친한 동생 작가와 온라인으로 스터디를 하고 있다. 일주일 동안 쓴 글을 메일로 주고받고 글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열띤 토론을 마치고 난 후에 나는, 옆에 놓은 베고니아를 내밀며 자랑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