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정 서울미술관 소장품전, '나는 잘 지고 있습니다'를 다녀와서
학창 시절, 엄마는 지나치게 엄격했다. 내 학교 시간표를 안방에 붙여 놓고 끝나는 시간에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건설일로 현장을 돌아다녔기에 한 달에 한두 번 주말을 이용해 집에 오셨고, 엄마 혼자서 네 자녀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인신매매가 성행하던 시절이라 엄마의 불안감은 높았고,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늘 품 안에 가두려 했다. 난 그런 엄마 때문에 숨이 막혔다. 대학만 졸업하면 바로 집을 나갈 계획을 매일 세웠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90년도 중반,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취직해 친구와 자취를 시작했다. 집을 떠나 자유로운 생활을 꿈꿨는데, 막상 직장 생활은 꿈같지 않았다. 꿈이라면 악몽에 가까웠다. 지긋지긋했던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워진 어느날, 나는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신호음이 울리고, "여보세요?" 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목이 메어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나인 걸 금세 알아채고는 잘 지내냐고 물었다. 뜨거워진 목구멍을 식히느라 한참 대답을 못한 나는 겨우
"응, 잘 지내고 있어. 엄마는?"
"엄마도 잘 지내."
말하는 엄마의 음성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날 나는 공중전화기를 심하게 오염시켰다. 손쓸 새도 없이 눈물 콧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엄마도 나도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잘 지내고 있다고 서로를 위해 어설픈 거짓말을 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석파정 서울미술관
단풍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서울 종로구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는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미술관 소장품전이 열리고 있다(~12월 29일까지). 올해는 늦게까지 날이 더워 단풍 절정 시기가 점점 늦춰졌고, 마침내 단풍이 절정인 사진을 확인하고 석파정으로 향했다(석파정은 흥선대원군 별장으로 유명한데, '석파'는 대원군의 호다).
석파정 서울 미술관은 2층에서 입장권을 끊으면 3층까지 전시장으로 연결되고 4층으로 올라가면 석파정으로 가는 입구와 연결되어 있다. 미술관을 통과하지 않으면 석파정을 갈 수 없다. 이 전시의 특징은 작품과 작가가 쓴 편지가 함께 전시된다는 점이다. 미술관에 들어서서 처음 만난 작품은 추사 김정희의 서예 작품이다.
▲추사 김정희의 작품 (석파정 서울미술관 소장)
'주림의 기묘한 필묵은 삼당의 자법이고 석실의 고아한 문장은 양한의 품격이로다'란 해석이 벽에 붙어있었다. 추사 김정희는 내게 그냥 역사 속 인물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제주도에 귀향 와서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절망해 쓴 편지를 보고 그제야 새삼스럽게 인지했다. 그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역사 속 박제된 인물이 아닌 큰 상실을 겪고 아파하는 연약한 존재였다는 것을.
"형구가 앞에 있거나 유배지로 갈 때 큰 바다가 뒤따를 적에도 일찍이 내 마음이 이렇게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중략) 아아 무릇 사람이 다 죽어갈망정 유독 당신만은 죽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끝내 당신이 먼저 죽고 말았으니, 먼저 죽는 것이 무엇이 만족스러워 나로 하여금 두 눈만 빤히 뜨고 홀로 살게 한단 말입니까. 저 푸른 바다, 저 높은 하늘과 같이 나의 한은 다함이 없을 따름입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이 고스란히 와닿았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더니 그의 글씨도 눈에 들어왔다. 서예는 잘 모르지만, 모르는 사람이 봐도 정갈하고, 단정함과 동시에 절제된 힘이 느껴졌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석파정 서울미술관 소장)
다음 전시실은 신사임당의 방으로 그의 그림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화에 능한 엄친딸로 초충도(꽃과 곤충을 주제로 그린 그림)를 그렸다는 것과 율곡 이이의 어머니자 오만 원 지폐에 나오는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붓 터치가 섬세하고 구조적으로 완벽한, 무엇보다도 어두운 종이에 채색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했다니. 풀과 꽃과 나비들은(쥐조차도) 어두운 공간에서 환하게 빛을 뿜고 있었다. 마치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는 것처럼.
작년, 고성에 있는 DMZ 박물관을 방문했다가 아트숍에서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도안으로 한 양산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 구매했었는데, 진품을 여기서 보다니. 여름 내내 들고 다녔던 양산의 도안을 미술관에서 실물로 영접하니 반가움이 더 했다.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자 현모양처의 아이콘을 넘어 엄청난 실력을 갖춘 예술가란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당대에는 안견에 버금가는 화가였단다. 신사임당의 작품 옆에는 그녀가 친정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시로 담겨있다.
다음 전시실에는 천경자 화백과 김창열, 김기창, 김환기, 장욱진 등 대한민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있다(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은 거의 그의 이름을 단 미술관이 있기에 따로 다룰 예정이다).
▲유영국의 산 (석파정 서울미술관 소장)
그림들은 대체로 유명한 작품들이라 익숙했는데, 유영국의 단순하고 강렬한 작품 앞에서 발걸음이 절로 멈춰졌다. 더욱이 작품 옆에 쓴 그의 첫 문장이 나의 전두엽을 강타했다.
"60세까지는 기초를 좀 해보고 자연으로 돌아가 보자는 생각으로 그림을 했었다."
국내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그가 60세까지 기초를 좀 해보려고 했다니… 그간 뭐 좀 해보려고 아등바등했던 마음에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기초를 좀 해보지도 않고 걸작을 쓰려고 욕심을 부렸던 건 아니었나. 거장의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언젠가 전시에서 그가 했던 또 다른 말도 떠올랐다. 요약하면,
"그림이 안 팔리는 시대를 살았기에 팔린다는 생각에 구속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안 팔리니까 빨리 그릴 필요도 없었고 재료가 넉넉하지 않아 많이 그릴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드라마를 쓰면서 편성을 받기 위해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까맣게 잊은 채 남들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찾아 마구 달려왔다.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쫓기는 심정으로 설익은 밥상을 마구 차려내며 설익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또 다른 밥상을 준비해 온 무수한 시간이 눈앞에 스쳤다. 그의 우직한 그림은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마음만 급하게 안갯속을 헤매느라 지쳐버린 내게 보내는 위로 같았다.
전시의 마지막 주인공은 이중섭이다. 이중섭은 워낙 가난했던 까닭에 은지화나 편지화가 많다. 이번 전시에 최초로 공개하는 편지화가 있어서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이중섭은 가족들을 아내의 친정인 일본으로 보냈다. 금세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영영 이별이 되어 버렸고, 이중섭은 40의 나이에 행려 환자로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고 이중섭은 통영으로 내려가 반짝 작품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때 이중섭의 친구 유강렬이 이중섭에게 양털 잠바를 선물했고, 이중섭은 이를 입은 모습을 편지에 그려 아들에게 보냈다(아래 그림 오른쪽 위, 양털 잠바를 입은 이중섭이 양털 잠바를 선물해 준 유강렬과 함께 포즈를 잡고 있다).
▲이중섭의 편지화 (석파정 서울미술관 소장)
"나의(아빠와 엄마) 태현군, 잘 지내니? 아빠는 건강하게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아빠가 있는 경성은 너희가 있는 미슈쿠보다 추운 곳입니다. 기차로 몇 시간이나 걸리는 곳에 있던 아빠의 잠바를 오늘 아빠의 친구가 가져다주어서 아빠는 매우 기뻐요. 이보다 더 추워도 아빠는 따뜻한 양피 잠바를 입고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
그림 속엔 이중섭이 양털 잠바를 입고 활기찬 모습으로 붓을 들고 있다. 혼자 남겨져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그림이 정녕 슬픈 것은 진짜 잘 지내고 있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 이상 잘 지낸다는 말은 하얀 거짓말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공중전화기를 오염시켰던 그날처럼. 잘 지내지 못하면서 잘 지낸다는 역설이 처연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마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단풍이 든 석파정 풍경
뭉클해진 가슴을 안고 4층으로 올라와 석파정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입구에 선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단풍도 더 버틸 수 없을 만큼 절정에 달해있었다. 숲속으로 들어가니 어떤 나무는 잎이 모두 떨어졌고 어떤 나무는 잎이 무성한 채 빨갛고 노란 물이 잔뜩 올라와 있다.
잎이 모두 진 나무도 한때 저런 절정의 시간을 보냈을까? 혹시 아무런 절정도 없이 잎이 져버린 건 아닐까? 그래도 나무는 괜찮을까? 내 걱정인지 나무 걱정인지 모를 생각을 하다가 부는 바람에 눈처럼 흩날리는 나뭇잎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은 저 잎도 이제 곧 다 떨어질 테고 그러니 나무는 그냥 다 나무겠구나. 한때는 절정의 시간을 보냈든 아니든. 잘났든 못났든 나는 그냥 나인 것처럼. 불현듯 마음이 평온해졌다. 앞으로 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엔 거짓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