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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Dec 10. 2024

미술관 여행, 이번 주는 문 닫습니다.

12살 한강의 질문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감 중)     


지난 화요일 밤, 뜬금없이 계엄령이 발표되고 그 사이 온갖 일들이 벌어졌다. 헌법을 무시하고 맘대로 계엄을 내린 대통령이나 명백한 내란죄임에도 눈앞의 이득을 위해 국민을 저버리고 탄핵투표장을 빠져나가는 의원들을 보며 나는 같은 질문을 했다. 동시에 한파에도 거리로 몰려나와 처음 보는 서로에게 핫팩을 나눠주고, 밥값을 선결제해 배고픈 사람들 배를 채워주고, 야광봉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탄핵”과 “투표해”를 외쳐대는 사람들을 보며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또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 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중)     


우린 계엄이 어떤 건지 잘 안다. 많은 피를 흘렸고 상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돕는다! 지들 맘대로 되지 않을 거란 말이다. 마음이 어지러워 미술관 이야기를 쓰기 어려웠음을 고백하며 한강 작가의 질문과 어떤 명작보다 숭고한 사진 한 장으로 이번 미술관 이야기를 대신하려 합니다.  다음 화를 기다려주신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진 출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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