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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Jul 24. 2016

한결같은 사랑

거기, 그곳에, 네가 항상


인생을 살다 보니, 나도, 남도, 사랑도, 변하지 않는 게 없었다. 

상처받은 가슴을 부여안고 깊은 밤을 눈물로 지새울 때, 자문해 보았다. 

내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대가 없는, 한결같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순간, 그 녀석 생각이 났다.

     

외롭고 힘들었던 대학 자취생 시절, 처음 녀석을 만났다. 

생후 2개월, 동글동글 오동통한 몸, 분홍빛 아담한 발로 아장아장 걸어 내게 다가와 작은 혀로 내 손가락을 핥던. 

간지러우면서 따뜻하고, 부드럽고 보송보송한 그 느낌에 반해 녀석과 인연을 맺었다.     

그 후로 11년 7개월 동안, 내 곁에 있어준 녀석은 친구였고, 동생이었고, 아들이었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냥 ‘가족’이었다.


대학생, 고시생 시절, 대학원, 그리고 직장인으로 살았던 20대와 30대 초반까지 이 녀석이 나를 지켜주었다. 

부모님보다, 형제보다, 친구보다, 그 누구보다도 더 오랜 시간, 우리는 늘 함께였고 즐겁고 행복한, 또 힘들고 슬픈 모든 시간들을 살아냈다.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뒷발가락 하나가 기형이었지만, 그것조차도 사랑스럽고 예쁘기만 했다. 

다만 병원 검진에서 알게 된 심장비대증은 외과적 수술이 가능한 병이 아니었기에,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사료를 조절하는 수준에서 케어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 대학원생 시절엔 어딜 가든 녀석을 데리고 다녔고, 학교 도서관보다 집에서 녀석을 무릎에 올려둔 채 공부하는 게 일상이었다.

 

취업을 하고 직장인으로 살면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찍 퇴근해서 녀석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녀석과 함께였던 때가 있었다.  


녀석이 내 곁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 비대해진 심장이 폐를 누른 탓인지, 녀석은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들어오면 반갑게 날 맞이하다가 숨을 못 쉬고 쓰러진 적이 여러 번.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녀석 코에서 핏빛 물이 보였다. 

녀석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제 집에 웅크리고 앉아 두 눈만 꿈뻑꿈뻑할 뿐, 내가 불러도 다가오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마지막 진료를 받고 링거를 꽂아 돌아온 그날 밤, 녀석은 물끄러미 나를 보더니 힘겹게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한발 한발 떼는 발걸음이 흔들렸고 눈빛이 떨렸다.

      

한참을 내 품에 있다가 녀석은 다시 일어나더니, 제 집이 아니라 용변용 신문지 쪽으로 갔다.

힘겨운 듯, 마지막으로 한번 더 내 눈을 마주하고는, 큰 숨을 내쉰 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녀석은,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난, 녀석을 안고 밤새 울었다. 

함께 한 11년 7개월의 시간을 반추하며, 이 녀석이 내게 준 한결같은 사랑을 기억하며, 고마워하며, 목놓아 울고 또 울었다.

     

다음 날 아침, 화장터를 찾아가 녀석과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청계사 화단에 녀석을 뿌려주었다. 

아프지 말고, 이제 마음껏 뛰어다니고, 절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 외로워하지 말라고 말하며.

    

매년 7월이면 청계사를 찾아가 녀석을 부른다.

잘 지내고 있니, 엄마 왔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말하며.  

   

벚꽃 만발한 봄날, 이 녀석이 문득 생각났다. 

내가 그 무엇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존재만으로 나를 사랑해 준 녀석이 너무 그리웠다.

언제 다시, 내가 그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반문하며.      


청계산에도 벚꽃이 만개했을 텐데, 녀석, 뛰어다니느라 바쁘겠다.


내 아들, 보고 싶다, 그립다.

그리고 사랑한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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