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가 되기까지의 다양한 여정-
가족의 최종 형태는 혼자 남은 개인이라는 말이 있다.
한 개인이 태어나 성장하여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자녀는 다시 성장하여 떠나고 배우자도 누군가 먼저 떠나니, 결국 가족의 최종 형태는 다시 혼자 남은 개인이라는 설명이다.
한 개인이 다시 혼자가 되기까지 걷는 ‘가족’이라는 여정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는 물론이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저마다의 모양새를 갖고 있다. 하지만 고정관념으로 설계된 '가족'이라는 틀을 모든 가족에게 적용하여 자칫 편견, 실수, 오해가 넘쳐난다.
캐나다에서 조립식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시던 분의 말이다. 아이들에게 조금 어렵고 복잡한 장치가 있는 경우 절대로 집에 가서 ‘엄마 아빠’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뭉뚱그려 ‘집에 있는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말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아이와 함께 사는 어른이 조부모, 편부모, 친척이나 다른 보호자(위탁 가정 등)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라는 칭호가 어색한 동성애자(대개 서로를 파트너로 호칭)의 자녀인 아이들도 있다.
사람은 혼자 이 세상에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므로 어떤 형태로든 가족의 구성원이다. 하지만 그 울타리 안 가족의 이야기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르다. ‘딸 바보’라는 훈훈한 말은 듣는 이도 행복해지는 표현일 수 있지만, 상처가 더 덧나는 사람도 있다. ‘엄마’(어머니)는 단어만으로도 마음의 고향처럼 따뜻하고 눈물이 울컥 나올 것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상처를 준 사람이 부모일 수도 있다.
‘가족’이 울타리처럼 개인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제한하는 구속의 족쇄인 경우도 있다. 사랑한다면서 독이 든 사랑을 주니, 받는 사람이 병이 드는 사례도 허다하다. 그러니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사람, 의도와 달리 실례를 범한 사람, 아픈 곳을 건드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그 다양한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아파트를 비롯한 주택, 식당, 놀이공원, 보험 선전 등 사회 곳곳에는 가족의 이미지로 아빠, 엄마, 자녀, 경우에 따라 조부모까지 포함한 구성원이 활짝 웃는 얼굴로 등장한다. Google에 ‘가족’을 입력하여 이미지를 열어봐도 마찬가지이다. 행복한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소외와 상처를 가중시키는 ‘가족’의 고정관념이기도 하다.
내 이웃, 친구, 동료가 심청이나 콩쥐일 수 있다. 출생으로 인한 위치가 본인의 선택은 아니지만 팥쥐나 장화 홍련의 오라비인 장쇠일 수 있다. 홍길동의 설움을 지닌 사람도 우리 사회에는 참 많았다. 밤에 몰래 벼 몇섬을 동생 집에 가져다 놓는 형도 있고, 동생을 몰라라 하는 놀부도 있다. 가족으로 인해 주어진 개인의 삶은 이처럼 서로 다르고 다양하다.
역사를 하다 보면 거대한 구조 안에 살다 간 참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역사의 접근 방법은 학자마다 다르지만, 나의 경우는 늘 사람에 관심을 두었다. 물론 학문의 대상으로 전체 사회구조에 얽혀있는 개인의 삶이었다. 그 개인의 삶을 추적함으로써, 그 사회의 역사상을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제 논리와 증거를 갖추어야 하는 학술적 글쓰기에서 비켜서니, 옛 사람이 책 안에, 과거에 박제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살아 숨 쉬는 사람으로 한층 가깝게 다가온다. 마음으로 그 삶을 만나고자 하니 글자 사이에 그들의 숨결도 느껴진다. 때로 그들이 남긴 말이나 시, 편지가 환청처럼 ‘음성지원’되기도 한다. 그렇게 내 삶과 어우러져 옛사람들과 만나는 글을 이렇게 브런치에 썼다(출간한 책도 같은 맥락이다).
그 과정에 나는 점차 자유로워지고 치유되고 있음을 느겼다. 지금 어떤 가족의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건, 개인으로 태어나 개인으로 떠나갈 철저하게 독립된 존재인 우리들이다. 가족에 의해 주어진 위치와 삶의 모양새는 다양하였지만, 이 땅에 살던 사람 모두는 저 마다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걸어갔다. 그 옛 사람의 흔적을 마음으로 따라 걷는 여정은 지금 나에게 자유와 치유를 가져다 주었다.
※ 글제목 그림 - 김홍도, <신행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