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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Jun 16. 2021

마른하늘에 날벼락

- 차가운 땅속의 조용한 뿌리 -

벼락! 얼마나 두려운 자연현상인가.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에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벼락 맞은 사람을 묘사한 흉한 그림과 더불어 벼락이 치는 날 취해야 할 요령이 실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벼락은 저 멀리 어딘가에서 치는데도, 방 안에 들어앉아 두려움을 느끼는 어마어마한 자연현상이다. 


유교정치 이념에서 특히 벼락은 하늘의 내리는 징계로 해석하였고, 그 경고의 대상은 국왕이었다. 이 때문에 벼락이 치면 하늘이 반드시 벼락이라는 경고를 내린 까닭이 있을 것이라며 득달같이 상소문이 올라왔다.




홍문관에서 올린 상소문은 대략, ‘잇달아서 번개가 내려치는 변고를 만났으니, 여섯 가지 일로써 자책하라’는 내용이었다. 왕이 상소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상소문을 읽고 잘 알았다. 너희들이 재앙을 늦추고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를 다 아뢰어 그 직무를 다하니, 내가 매우 아름답게 여긴다. 유념하겠다.’ (인조 2년(1624) 9월 14일)

 


벼락은 하늘이 국왕에게 내리는 일종의 꾸짖음[天譴]이었다. 벼락이 일면 관료들은 국왕에게 더욱더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하며 덕을 쌓되 여섯 가지 일, 정치가 바른 지, 백성이 생업을 잃지는 않았는지, 사치하거나 뇌물이 행해지는지,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없는지, 궁중에 여인으로 인해 정치가 어지러운 일[女謁]은 없는지 등을 자책하고 돌아볼 것을 간언하였다. 


자연에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도 벼락이 내려치곤 한다. 갑자기 속수무책으로 당하기에  ‘날벼락’이라고 부른다. 조선 후기 문신 윤기(尹愭, 1741~1826)가 정원에 복숭아나무를 바라보며 읊은 시를 읽으며 이를 생각해 본다. 


정원 안에 복숭아나무  


봄바람 따스한 이월 삼월에 

사람마다 다투어 꺾어 가니 

가지들 모조리 잘려나갔네 


복숭아가 열린 뒤에는 

익기도 전에 마구 따 먹으려

혹은 장대로 후려치고

혹은 조약돌을 던지니 

푸른 잎은 우수수 떨어지고

어린 가지는 온통 부러졌다


도끼질은 면했다 하더라도 

날벼락 맞은 것과 뭐가 다르랴 



좋은 재목감의 나무는 하루아침에 도끼로 베어지는 날벼락을 당한다. 최고의 솜씨를 가진 공예가가 아름답게 다듬어 모두가 우러러보는 조각품이 되어도, 최고급 가구나 멋진 제단의 장식으로 꾸며진다 해도, 도끼질은 나무에게 날벼락일 뿐이다. 복숭아나무는 비록 도끼질이라는 재난은 당하지 않았지만,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시련을 만난 것은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물론 모든 좋은 나무가 도끼로 베어 지거나, 복숭아나무마다 가지가 온통 꺾이고 부러지고 장대와 돌팔매질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순간에 내려치는 날벼락은 특정한 대상을 겨냥하지 않는다. 오늘도 세상에는 이유 없이 온갖 벼락이 내리치는 사건을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눈물이 있다.


그 시련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벼락이 할퀴고 간 그 삶의 자리를 어떻게 해야 수습할 수 있을까. 왜 하필 그 날벼락같은 불행이 그 순간, 그 사람에게 찾아왔는지 이유를 알 수도 없다. 


우리 집에서도 일어났지만, 벗어 놓은 옷은 그대로 의자에 걸려있는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 가족이 있다. 찰나에 생사가 갈려버려 함께 먹으려 준비해 둔 저녁을 다시는 함께 하지 못한 가족이 있다. 세상에 날벼락이 어디 그뿐이랴...


복숭아나무와 인간의 삶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저 시를 읽으며 차갑고 딱딱한 땅을 기어코 뚫고 내린 생명의 뿌리를 생각해 본다. 가지가 잘려 나가고, 돌팔매질에 파이고, 열매를 모두 탈취당해도 뿌리는 땅 속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내 삶의 뿌리를 생각해 본다. 곱디고운 그 세월 다 지나가고 이제 연로하여 마른 나뭇잎처럼 작고 가벼운 몸이지만 목소리는 여전하신 나의 어머니, 어쩌다 나를 만나 평생 아끼고 후원해 주는 남편과 다른 모든 가족, 세상 끝날까지는 물론 영원까지 책임지고 품고 가는 자식... 나의 신념, 믿음, 원칙, 무엇보다 살아있는 이 생명 자체. 


그 모든 것이 얽혀 땅 속에서 조용히 숨 쉬는 뿌리가 있기에 벼락이 치고 가도 또 숨을 쉬며 오늘을 감사로 보낸다. 벼락을 이겨낼 만큼 의지가 강해서도, 시련을 잘 극복해 내어서도 아니다. 땅 속에 내려진 생명의 뿌리가 있어 기적처럼 호흡하고 있음이다. 그뿐이다. 


※ 시의 출처는 조선 후기 문신 윤기(尹愭, 1741~1826)의 《무명자집》 제3책. 한국고전종합 DB,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이규필 역. 이 글에서는 서술의 편의상 일부만 정리하여 인용하였다. 

※ 상소문 출처는 《대동야승》, 응천일록(凝川日錄) 3. 한국고전종합DB

※ 사진 출처 https://magazine-k.tistory.com/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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