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잠 기운에 무엇을 바라보는지,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에 따라 그 감성은 여러 갈래로 표출될 듯하다. 조선 후기 문신 윤기(尹愭, 1741~1826)가 10세 때의 어느 가을 새벽에 지은 즉흥시이다.
가을 새벽에〔秋曉卽事〕
구름 흩어진 하늘에 별이 드물고 버들은 바람에 나부낄 제
대나무로 엮은 발, 그림자 어둡고 달빛도 흐릿하네
종소리는 아련히 차가운 강 너머 들려오고
나무 빛은 어슴푸레 먼 산봉우리 뒤덮었네
무슨 사연 있기에 풀벌레들 애절하게 울고
그 누가 재촉하기에 기러기들 서둘러 나는가
새벽녘에 일어나 보니 구름은 흩어졌지만 별은 드물게 보인다. 여름이 지나 찬바람이 느껴지는데 여전히 걸린 대나무 발 넘어 보이는 달빛도 흐릿하다. 그의 귀에 가을 풀벌레의 소리는 사연을 호소하듯 슬프고, 어슴푸레 밤하늘의 기러기는 바쁜 날갯짓으로 멀어져 간다.
무려 271년 전의 작품이지만, 2021년 이 가을 새벽녘에도 여전히 풀벌레는 울어댄다. 서로 돕는 날갯짓으로 새벽의 찬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기러기도 여전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도 새벽 서리에 여전히 어슴푸레하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예나 지금이나 자연의 생명은 여전하고, 읽는 이의 감성도 그 옛날의 10살 시인과 통한다.
귀뚜라미, 여치 등 가을을 알리는 풀벌레의 소리는 노래하는 소리이기도 하고, 우는 소리이기도 하다. 짝을 찾기 위한 맹렬한 소리이기도 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노출시켜 천적을 불러들이는 목숨을 건 소리이기도 하다.
날개를 비비고 비비다가 점점 닳아 초라해지고, 심지어 잃기까지 해도 풀벌레의 본성은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울음이던 노래이든 생명을 걸고 끝까지 해내는 열렬함으로 이 가을을 보낸다. 사람의 눈에는 잘 띠이지도 않는 작은 풀벌레의 처절하리만치 숭고한 본성이다.
나는 그래 본 일이 있는가. 저렇게 울어본 일이 있는가. 그토록 애절한 노래를 불러 본 일이 있는가. 이 생명의 본성을 숭고하게 지켜내려는 처절한 노력을 얼마나 기울여 왔던가. 삶의 가을에 접어든 이 새벽녘, 보이지도 않는 어딘가에서 여전한 맹렬함으로 존재를 알리는 풀벌레 앞에 문득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