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듣는 백반집
요즘은 라디오를 듣는 취미가 생겼다.
막연히 클래식이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라디오 채널을 추천받았다.
출근길, 나직한 DJ의 목소리와 함께 음악을 듣고 있을 때면, 바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이름도 복잡하고 어려운 클래식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반복되는 지하철에서의 일상이 꽤 다채롭게 느껴졌다.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아, 아침에 음악을 들으며 눈뜨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매일 아침 7시가 되면 내 핸드폰에선 누군가 정성스럽게 선곡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라디오는 나에게 ‘오래된 문화’ 같은 것이다. 추억의 산물이랄까.
초등학교 시절, 리어카에서 일명 ‘짬뽕 테이프’라는 것을 팔았는데 꼭 내가 원하지 않는 노래들이 한 두곡 들어있었고 그 무렵 친구들끼리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들을 녹음해 함께 듣는 문화가 있었다.
나는 매일 저녁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이 나오길 빨간 동그라미에 손을 올려둔 채 숨죽인 채 기다렸다. DJ 멘트가 전주 음악을 덮지 않기를 조마조마하게 바라던 그때, 엄마가 “너는 대체 왜 라디오 앞에 엎드려서 듣는 거야?”라고 묻던 시간이 있었다.
그 후 나에게도 어엿한 cdp가 생겼고, mp3가 생긴 후로는 라디오는 먼 옛날의 산물 같은 게 되었다.
라디오를 듣는다는 건 버스, 택시 안에서의 귓동냥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라디오는 늘 ‘한 물 간 그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런 내가 요즘 라디오에 빠져 있다.
생각지도 못한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라디오를 들으며 삶의 활력을 얻는다는 취청자들의 사연에 뭐가 그렇게 재밌다는 거야~ 하면서 호객행위 당한 듯 더 귀를 쫑긋한다.
예상치 못한 소식들이 내 하루를 흥미롭게 만든다.
얼마 전, 차를 타고 장거리 운전을 하던 때였다.
아이는 잠들었고, 남편은 운전대를 잡고 곧 잠들 것 같았다.
나는 남편에게 라디오를 틀자고 제안했다.
지금 클래식을 틀면 큰일 날 것 같아, 꽤 재밌다고 소문난 채널을 골라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 우리는 떠들던 입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별 반응 없어 보이던 남편이
“뭐라고 하는지 궁금하다”
하면서 사연에 귀 기울이기도 했고, 그 사연과 절묘하게 이어지는 선곡도 기가 막혔다. 게다가 남편이 정말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자 우리 둘은 눈을 마주쳤다.
“지금 이 노래가 나온다고?”
우린 잠시 노래에 맞춰 어깨춤을 추었다.
"이런 게 좋더라니.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노래가 나와. “
점심식사 후 산책길에 듣던 라디오에서, 오래 전 즐겨 듣던 노래가 들려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어폰 너머 어딘가에, 나와 같은 음악 취향을 가진 누군가에게 괜시리 반가워 혼자 웃음이 났던 순간을 들려주었다.
내 얘기를 들은 남편은
"백반집 같네"
라고 답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백반집?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건가?'
"백반집 갈 때는 뭐가 반찬으로 나올지 모르지만, 어쨌든 꽤 괜찮은 음식이 나올 거라는 생각으로 가잖아."
참 멋진 비유다.
백반집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그날 어떤 반찬이 나올지 궁금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오늘도, 단골 백반집에 들르듯 주파수를 맞춘다.
오늘은 어떤 반찬이 나올까.
어떤 사연과 노래가 내 하루의 시작을 함께할까.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 어딘가에 있을 내 마음 같은 사연
그리고 그 순간을 위한 노래 한 곡.
라디오는 여전히 예측할 수 없어서 더 반가운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