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물 한 잔

30초 남짓,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by 소라움

누가 봐도 별 것 아닌 작은 일이지만, 나는 기어코 하루를 버틸 힘을 찾아본다.


눈꺼풀 위로 어렴풋이 내려앉은 햇살, 오차 없이 울리는 아침 알람. 어제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든, 야속하게도 오늘은 시작되었다. 눈만 뜨고 천장만 멀뚱하게 쳐다본다.

'오늘도 시작됐구나'

몸을 옆으로 누이고 이불속에서 핸드폰을 붙잡는다. 혹시나 내가 잠든 사이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을까 액정을 들여다보지만, 머릿속에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더 선명해지기만 한다. 액정 한 켠에 자리 잡은 07:00 숫자가 날카로운 시곗바늘처럼 나를 콕콕 찔러댄다. 그래, 안다. 더는 버틸 수 없고 이제 정말 일어나야 한다.


시원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면 정신이 번쩍 들 것 같지만, 커피포트의 버튼을 꾹 누른다.

'아침 공복에 마시는 미온수가 보약'이라던데,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말들을 흘려듣지 못하게 된 때가. 건강이라는 단어 앞에서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왕 살아야 할 삶이라면, 나에게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켜보자고 다짐했다. 물이 끓는 시간을 타이머 삼아 양치와 세수를 시작한다. 크림까지 모두 바르고 돌아오면 물은 알맞게 끓어있다. 물 끓는 시간조차 알차게 쓰는 나, 뿌듯하다.

어젯밤 깨끗하게 씻어둔 하얀 머그잔을 꺼내 보글보글 끓인 물을 붓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멍하니 쳐다본다. 티백 하나 우려낼 여유도 꿈꾸지 못하는 아침이지만 따뜻한 물 한 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머그잔을 손으로 감싸 쥐자 내 손바닥에 따스한 온기가 퍼진다. 한 김 식히려고 가슴 부풀려 숨을 모았다가 후-하고 입김을 내뱉고, 조심스럽게 입술을 대본다.

물 한 모금에 내 몸에는 천천히 온기가 퍼져나간다. 꿀꺽, 하고 물을 삼켜내자 잠들어 있던 장기들도 '시작이구나~'하고 기지개를 켜며 '나 여기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래, 이제 너희도 일어나야지.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부릉부릉. 요란하지 않지만 조용하고 분명하게 하루의 시동이 켜진다. 따뜻한 물 한 잔, 30초 남짓하는 짧은 순간이지만 이 사소함을 나에게 내어줄 수 있는 하루라면, 오늘은 나와 조금 더 사이좋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물론, 나의 각오는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희미해질지 모른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부터 '이 고행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냐'라고 중얼거리다가,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얼음을 가득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켜고 있을 확률이 98%

그래도 지금은, 물 한 잔에서 하찮은 기쁨을 누려보자고.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