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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치즈 Feb 15. 2021

운동선수에서 취준생으로

대학에 가면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았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면,

내 인생은 앞으로 꽃길만 펼쳐진 행복한 삶이 기다릴 줄 알았다.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내 대학 생활은 불행했다,

나는 절대 20대 초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즐거웠던 기억이 너무 없어서...

마치 게임에서 퀘스트 하나 깨면 더 높은 난이도 퀘스트가 계속 나오듯이 미션을 하나씩 하나씩 클리어하면서 20대를 보냈다.


1학년 1학기.

신입생이란 설렘을 느낄 새도 없이 선수생활과 반복되는 얼차려로 땀에 젖은 채 보냈다. 그냥 연속되는 긴장 파묻혀 살았다.


2학기가 되었을 땐, 그래도 무의미하게 보내기가 싫어서 목표를 한번 세워봤다.

'성적 장학금 받아보기!'

결과는 4.3 만점에 3.8 언저리로 장학금을 조금 받았다.


그리고 2학년, 선수 생활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대신 그 에너지를 학점에 쏟아 만점을 받아보겠다는 목표로 공부를 했다.

결과는 4.0/4.3. 아쉬웠지만, 만족했다.


태권도를 하게 되면 코이카의 코스를 밟는 게 엘리트.

다음으로는 해외파견 경력을 쌓기 위해 코이카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해 합격했다. (세네갈로.. '아프리카 청춘이다'를 연재한)

서류 > 1차 실기, 필기 > 2차 면접까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넣었는데 정말 덜컥 붙어버렸다.


세네갈에서 나는 언어의 재미를 느끼고,

프랑스어 자격증 DELF B2를 취득해서 돌아왔다.

그리고 2학년 2학기 복학생.

호기롭게 불문과 졸업반 회화 수업에서 A+를 받았다. 더불어 학점 만점도 받았다.


자신감이 화수분처럼 넘쳐나던 그 시점,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사건. '경영학과 복수전공!'

솔직히 좀 무서웠다 망신당할까 봐. 그래서 일종의 검증 테스트로 복수전공 필수과목 3가지 중 하나인 회계원리를  들었고 A+를 받아 당차게 경영학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년 동안 피땀으로 쌓아온 운동 테크를 그만두고, 취준생 이란 신분증을 갖기로 했다. 공부의 과정에서 그동안 운동으로 쌓아온 악과 끈기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정직하게 내가 시간을 쏟는 만큼 학점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더 독하게 매달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하는 애들은 무식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나댔다. PPT 준비와, 발표도 그냥 자원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하다 보니 모든 수업이 두렵지 않고 즐거워졌다. 발표는 나만의 노하우도 생겼다. 


정신없이 경영학과와 3학년을 보내고 나서,

문과 취준생은 영어성적(토스 lv7 이상, 토익 900 이상)과 컴퓨터 자격증(MOS)이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었고, 자소서를 위해 NGO에서 6개월간 번역 인턴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4학년 1학기가 되어 서류 지원을 시작했다.


이 과정 속에 도움받을 수 있는 선배도, 동기도, 후배도 없었다.

그냥 혼자서 발품 팔고, 교수님 찾아가고, 카페 활동도 해보고, 스터디 모임도 하면서 준비했다.


학점은 혼자 묵묵히 앉아서 공부하면 되는데,

취준은 그런 단순한 게 아니어서 더 외롭게 느껴졌다.


고된 과정을 견뎌낸 만큼 보상은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순탄함은 내 것이 아니었다. 서류 탈락을 한 10번 연속하고 나니까 다시 운동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갈등과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감의 성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보면 워낙 자소서가 형편없어서 당연한 결과이긴 하지만 그 시절엔 잘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서류 탈락 23 연속 콤보 정도 달성했었나..

그 무렵 "위대한 기업을 경험하실 분을 모집한다"는 다음카카오(현 카카오)의 썸머인턴 채용공고를 발견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라는 생각으로 자소서를 작성해나갔다. 이전처럼 짜인 템플릿이 아닌 진솔한 이야기로 써봤다.

그리고 약 1주일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혹시 이번 다음카카오 썸머인턴 지원하셨죠? 서류 합격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맙소사. 내가 왜 도서관에서 이 전화를 받았을까.

소리를 미친 사람처럼 크게 지르고 싶었다. 그때 전화기에다 대고 감사하다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나의 첫 서류 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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