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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Mar 19. 2020

코로나 19, 살림에 대한 고찰

정확히 2월 26일부터, 오늘까지 한 달이 조금 안된 시간 동안 등원을 못하는 6살 딸아이와, 재택근무를 시작한 남편과 24시간 밀착 생활 중이다. 


살면서 이렇게 세 식구가 붙어 있기는 처음이다. 사실 버겁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 의, 식, 주를 영위하기 위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이 말이다.


거의 한 달 동안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살림 행위가 “쓰레기 버리기”인 것을 알았다. 쓰레기를 버리는 물리적 행위가 싫다는 것은 아니다. 외출이 급격히 줄어든 지금에는 쓰레기를 버리 위한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바깥공기를 쐰다는 것이 되려 고맙다. 다만 쓰레기 버리는 것이 진짜 싫은 이유는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드는 여러 가지 생각, 특히나 죄책감 때문이다. 


사실, 요즘 코로나 19 사태가 발생하며 가장 미안하고, 안된 존재는 ‘아이’들이다. 

코로나 19의 발생에 대해 어른들의 잘못된 식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한다. 즉, 생태계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인간의, 어른의 이기심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행위는 지금의 이 비극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나의 죄책감으로 돌아가, 코로나 19 즉,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우리는 집안에 머물며 어쩔 수 없다는 또 다른 이기심 하에 평소보다 많은 쓰레기 -일회용 마스크를 비롯, 배달음식, 식음료 플라스틱, 비닐-를 발생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걸 오롯이 밖으로 내다 버리며 이것 또한 또 다른 모습의 재앙에 불씨가 되지는 않을까 불안감과 아이들에게 미안해지는 감정이 생긴다.


‘이 많은 쓰레기는 또 어디로 갈까?’

‘이 쓰레기들은 어떻게 처리될까?’

‘재활용의 의미가 있을까? 정말 잘 다시 사용되고 있는가?’


지금 내가 버리고 있는 쓰레기들로 인해, 나아가 인간의 편리함을 위한 행동들로 만년설과 빙하가 녹고 있다. 다들 알고는 있지만 묵인하고 있는 그 사실! 

심지어 만년설, 그리고 빙하 안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대의 균들이 얼어 있다고 한다. 그 균들이 지금 살아나고 있고, 어쩌면 코로나 19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안고 있을지 모른다. 


“방탕한 사람이 벼락을 맞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린아이가 고통을 겪는 것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상에서는 어린아이가 겪는 고통과 그 고통을 야기하는 공포, 그리고 그 고통을 설명해주는 이유를 찾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에서> 

아이들은 죄가 없다. 그저 태어났고 본인에게 주어진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게, 나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친구의 손도 잡지 못한다. 그리고 어디서나 마스크를 쓰고, 심지어는 목숨도 잃는다. 


우리는 아이들이 겪는 고통과 그것을 야기하는 공포, 그 고통을 설명해주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물론 많은 어른들이 현재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어른들이 조금 더 깊게 고민하고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기 위한 일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나부터, 우리부터…


#분리수거장에 가면 아직도 비닐과 플라스틱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비닐포장이 된 플라스틱을 그대로 버리더라. 대다수가… 분명해봤자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아주 작은 행동, 그 행동을 하겠다는 인식이,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첫 발자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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