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방황을 적는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글을 쓰는 게 싫었지만, 오늘은 두서없이 쓰는 것에 갑작스럽게 용기가 났다.
그간 많은 큰 변화와 작은 일들이 많았다. 10년 넘게 다니던 회사에 작별을 고했고, 아이의 방학이 시작됐다.
한 없이 즐거운 기분을 유지해야 하는 시간 속에서 진지한 감정을 끌어올리는 게 싫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게 어려웠다.
붕 떠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꽤 당황, 방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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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허공을 헤매는 생각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하루하루가 미친 듯이 즐겁지는 않다. 내 발로 퇴사를 하고 내 손으로 아이의 방학을 함께 하겠다 했지만, 아직 이 둘을 제대로 저울질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거기다 해맑은 남편은 맛있는 저녁상을 차리는 현모양처의 그림마저 그리고 있다.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회사를 나온 지 (아니 아직 남은 연차를 소진 중이니 퇴사처리가 안됐으니) 한 달도 안 되었는데 벌써 후회의 카드를 들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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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후회하는 건지? 물어봤다. “아니다”
회사를 나온 건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일 중에 하나다. 나는 그 모르핀 같았던 그곳을 나오지 못했다면, 진짜 겪어야 할 고통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 정작 내 몸에서 더 이상 약이 말을 듣지 않을 때면 그때는 더 큰 후회를 했을 것이다. 일단은 이 모호한 ‘모르핀 변명’이 퇴사의 이유의 가장 큰 축이다. 언젠가 <워킹맘, 퇴사자 in the house> 90년대 향기가 솔솔 나는 제목으로 뭔가 글을 꼭 길게 쓸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을 맘에 품고 있다.
눈이 점점 침침해져 간다. 화장품에 적힌 작은 글자들을 잡은 손이 멀어져 감을 느낀다. 이건 아마 매일 밤 어둠 속에서 보는 넷플릭스 때문일 확률이 높다.
어제는 미루고 미뤘던 <중경삼림>을 드디어 봤다.
언젠가 한 번은 봤던 영화다. 하지만 그게 언제였는지 영화를 본 나는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보고 싶고 좋아했을 영화다. 아마 중간에 보다가 꺼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둘 중 하나다.
정말 재미가 없었거나, 진짜 진지해지기 싫었거나.
요즘의 나는 후자다. 요즘 다시들 <중경삼림>에 열광한다고 하는데, 분명 보고 싶으나, 진지해지기 싫어 꼬깃꼬깃 주머니 속에 박아 두었다.
방황이라는 게 뭘까 생각해본다. 청춘들의 방황. 시대가 주는 방황. 나에게는 방황이라는 게 있었던가 생각해본다. 각자의 방식으로 웃고, 울고, 엉키고, 풀어가는 4명의 청춘, 혹은 인간들을 보고 있자니, 진지한 열매가 꽤 달콤해 보인다.
진지함을 마구잡이로 휘갈겨 써보는 지금, 내일이면 이불 킥을 할지 몰라도, 방황스럽던 마음이 진정된 것 같기도, 혹은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하다.
정제된 나를 보이겠다고 단정하게 각을 잡아 글을 쓰는 것도 귀찮아졌다. 생각해보니,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주는 약간의 진지함과 작가적 압박감이 더욱 나를 그리 몰아갔다는 비겁한 핑계를 대본다.
이렇게, 오늘은 내 방황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