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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Jun 13. 2021

마땅히 쓰고픈 이야기가 없지만, 뭐라도 쓰고 싶은 날

무기력했던 한 주를 마감하며…

호르몬이 강렬한 존재를 발산한 시기.

무기력했던 한 주의 핑계를 이렇게 시작해본다.

몸은 두 배로 무거웠고, 이성은 한 없이 가벼웠다.


지난주 동안, 똑같이 재택근무를 하고 아이의 등원 하원을 했다.

아침은 간단하게, 저녁은 많은 이들(반찬가게, 배달,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 겨우 넘겼다.


투닥투닥…

남편과는 싸우고, 화해하고 같은 패턴의 연속이다.

집 안 곳곳 숨은 그림 찾기 같은 맥주캔 좀 치우라고

윽박지르면, 화장실 불 좀 잘 끄라고 구시렁댄다.

그러다가 꼴 보기도 싫은 맥주캔을 따서 나눠먹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왜 아까 싸웠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건가보다’ 깊은 생각 대신에 벌컥 맥주를 들이켠다.


하…

구구단을 배워서 게임을 하고 싶다는 7살 딸아이.

더하기도 제대로 못하면서 의욕이 가득 넘친다.

“얘야.. 곱하기와 더하기는 맥락을 함께 한단다.”

다정한 엄마의 마음을 담아 가르쳐본다.

10+5=15의 산을 넘었다.

20+5를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내 자식 가르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하는데, 이미 알았지만 오늘 또 한 번 깨닫는다.

오른손 검지에 낀 묵주반지를 엄지로 더듬어본다.

몇 번이고 묵주기도를 대뇌 인다.



머쓱…

딸아이의 유치원 엄마들과의 단톡 방.

건너 건너 초대받은 방에서 카톡 ID만 알뿐 전화번호를 모르고 지냈다.

전화할 일이 있을지 모르니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친구 엄마의 말에

“010. 0000. 0000, 최XX 입니다”

수줍은 이모티콘과 함께 번호와 이름을 말했다.

까르르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번호 말할 때 자기 이름 말하는 엄마 처음이에요!’

라고 한다.

번호를 말할 때 이름이 나오는 게 당연한 건데, 이 세계는 그게 새롭구나..!

좀 오버했나? 머쓱타드 이모티콘을 날려본다.

이미지출처 YOO. GRIM


끄적.

한 주가 특별할 게 없었어.

그래서 마땅히 쓸 얘기가 없었다.

뭐라도 끄적대다 보면 생각이 정리가 되고

자연스럽게 연필을 잡게 되는데

그 마저도 없던 한 주였다.


괜한 컨디션의 핑계를 대볼까 싶었는데,

호르몬이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뭐라도 쓰고 싶어 졌다.


이렇게 또 별거 아닌 일들을 끄적대다 보니

글이 된다. 가득 채워진 글씨 한 바닥을 보니 대견하고 다음 주를 향한 의욕이 생긴다.


글은 참 마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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