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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생 학생 Feb 08. 2024

사우나를 좋아하는 엄마와 반신욕을 좋아하는 딸

나를 일으켜 세우는 방법

영하 -5도의 이른 아침.

입만 열어도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추위다.

엄마는 목욕가방에

마른 수건 세 개를 서둘러 챙긴 뒤

언니와 나를 이끌고

집에서 10분 거리의 목욕탕으로 향했다.



한방 향과 알로에 향으로 맞이해 주는

목욕탕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선 뒤

옷을 탈의한 후

목욕탕 팔찌를 왼손에 찬다.

활화산 같은 뜨거운 증기를 뿜어내는

목욕탕 안으로 향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한 손에는 의자, 다른 손에는 세숫대야 챙겨

좋은 자리를 물색한다.

우리에게 명당자리는  

온탕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



재빨리 온몸을 씻고,

머리카락이 물 안에 들어가지 않도록

손목에 차고 있던 옷장 열쇠를 머리끈 삼아

똥머리까지 묶어주면 진짜 준. 비. 완. 료. 다.

온탕으로 입수~~~~

후~

입김을 내며 추위 속을 걸어온 보람이 있다.

누가 바나나 우유 맛있게 먹는 방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목욕탕 온탕에서 먹는 차가운 바나나 우유’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20대에는 목욕탕 근처에도 얼씬 않다가

미국에 와서야 귀하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 딱 1곳 있는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


아이들과 나를 반겨줄 일요 목욕탕은 없지만

잠시 시간만 내면 언제든 개인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주 프라이빗한 온천이 있다.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집 욕조’



서울살이 하던 시절

욕조가 없는 다세대 주택에 살았었는데,

인터넷으로 주문한

플라스틱 욕조에 물을 받아 가끔 반신욕을 했었다.

플라스틱이라 금방 뜨거운 물이 식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니 플라스틱 욕조에 비하면 지금은

호화로운 ’ 개인 전용 온천‘.

배 조금 위까지 물이 차오를 정도로

뜨거운 물을 채운 뒤 몸을 담그고

얼굴 위로 송글 송글 맺히며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책을 읽는 시간은

달콤한 낮잠과도 바꾸지 않을

내가 가장 애정하는 시간이다.



한동안 주변이 어수선하고

숨 쉴 공간이 없었던 달력을 소화해 내면서

에너지 충전이 쉽지 않았던 건

뜨거운 물을 데워주는

탱크가 고장 나

반신욕을 할 수 없어서였다.

드디어 수리가 끝나고

읽고 싶은 책을 끌어안고 욕조로 향했다.


뜨거운 욕조 안에 몸을 담그고

’ 후~‘하고 숨을 내쉬는 그 순간,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 이제는 나를 좀 돌보자’라는 위안과 위로.

그리고 안심.

 


초록 빛깔의 때밀이를

이리저리 피하는 내 몸을

구석구석 꼼꼼히 밀어주던 엄마의 나이가 된 나.

엄마가 살고 있는 곳과

다른 공간에 있는 어른이 된 나.

그때의 그 따스함을 어쩌면

몸이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언니랑 셋이 나란히 탕에 앉아 몸을 녹이다  

엄마가 땀을 빼러 사우나에 가면

언니랑 나누던 사소한 대화들.

가끔 어이없다며 웃는 언니를

따라 웃던 그 옆에 앉아 있던 나도 떠오른다.



이제 나는 작은 욕조에

혼자 몸을 담그고

바나나 우유 대신에

어른의 특권인 커피를 마시면서

독서를 한다.


내 몸은 여전히 뜨겁고도 따스한

그 시간을 가장 애정한다고 말한다.

내 마음과 몸을 모두 다독여주는 반신욕.

아마 나는 그때의 그 시절을

가장 따스하게 기억하고 있나 보다.

엄마가 우리를 키우며

자신을 다독이고 위로하던 방법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 가면

오랜만에 엄마와 언니랑 같이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다녀와야겠다.

아이들에겐 바나나 우유를 하나씩 사주고

나는 언니와 엄마랑

얼음이 동동 띄워진 매실 주스를 마셔야겠다.

그립다, 그 시절.



#힐링방법

#반신욕하기

#엄마와의추억

#언니와의추억

#따스한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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