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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을 보내는 게 목표는 아니거든요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것

by 향긋한

학교에서는 가난한 학생조차도 정치경제학만 배우고 철학과 다름없는 생활의 경제는 진지하게 가르치지 않는다. 그 결과 학생이 학교에서 애덤 스미스, 리카도, 세의 저서를 읽는 동안 그의 아버지는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냉장고 없는 4인 가족의 생활. 책 ‘궁극의 미니멀라이프’ 작가는 다소 일반적이지 않은 자신의 미니멀 생활을 소개한다. 집에 에어컨도 없고, 세탁기도 없고, 심지어 냉장고도 없다. 한 달 전기세가 한국돈으로 약 5,000원이라니 따라 하면 관리비라도 좀 줄일 수 있을까 싶어 안 하던 손빨래도 따라 해 봤다. 안타깝게도 손빨래는 도전 1일 차 만에 막을 내렸지만, 책은 몇 년 사이 수십 번도 더 읽었을 만큼 삶이 버겁고 힘겹게 느껴질 때마다 내가 유일하게 위로받는 안식처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작가의 삶을 동경하는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군살 없는 전기 명세서를 동경했다기보다, 삶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바로 내 동경의 대상이었다. ‘미래에 대한 금전적인 불안이 없는’ 마음 말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수백만 원짜리 영어 유치원에 등록했다는 카톡이 왔을 때, 두 입이 쩍 벌어졌다. 친구의 결정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같은 상황에서도 나는 그렇게 큰돈을 교육비로 못쓸 것 같아서였다. 우리 시부모님도 아이들 교육시키려면 돈이 많이 드니 미리미리 저축을 많이 해두라고 심심찮게 조언을 하신다. 교육비에 대한 말을 듣고 있다 보면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도대체 얼마나 돈이 있어야 하는 건지, 앞으로 돈이 얼마나 필요하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 둬야 하는지 근심이 가득해진다. 근데 공부나 영어회화 보다 아이에게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가르쳐 주고 싶다는 책의 구절을 읽고 처음으로 ’ 나는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길 원하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미국에서 홈스쿨링을 하자, 주변에서는 학교를 안 보내는 게 불안하지 않은지 물어왔다. 그 질문에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게 목표가 아니라서 불안하지는 않아요. 아이들은 배우고 싶은걸 마음껏 배우고, 마음껏 놀고 매일 즐거워해서 참 좋은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사실 나는 학벌주의 의식이 강한 부모님 밑에 자라 내가 하고 싶은 일과는 상관없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성공한 삶이고,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초반을 보냈다. 입시에 실패한 게 마치 인생에서 실패한 것 마냥, 친구와 술집에서 과일 소주를 먹던 20살의 내가 아직도 떠오른다.


대학 졸업 이후 대학원 입시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루는 20대 중반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시적일 뿐, 또 다른 목표를 성취해야 하고, 주변의 기대를 만족시키면서 나의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굴레에 빠졌다.

행복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고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늘 치열하게 애쓰는 삶이 정말 행복한 삶일까?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상관없이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살아가는 게 행복한 삶일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사람들이 정답이라고 하는 타인의 기준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 보다 자신의 기준이 늘 내면에 있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배움이 있는 일상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아이들이 독립하기 전에 선물해 주고 싶은 것은 함께 세상을 탐험하는 ‘경험’이다. 다른 사람들이 응당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정해진 코스대로 아이를 교육시키는 삶 대신,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세상을 탐험하고 싶다. 주변의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처럼 교육비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면, 내 아이만 뒤처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따라가는 전에 멈춰 서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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