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처음으로 수원시립미술관에 방문했다.
요즘 미술관 가는 것이 너무나 고파서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날씨도 너무나 좋았지.
수원역에서 내려서 미술관까지 걸어서 4-50분. 날씨가 좋아서 걷기로 했다.
정말 이게 신의 한수가 될 줄이야.
수원이 핫하다 했는데 아니 가는 길이 너무너무 재밌는 거야.
절도 구경하고, 코스모스도, 아리랑 공연하시는 어머님들도, 문화유적지도 등등 많고 분위기도 좋고 날씨도 한 몫했고.
그러나 오늘의 주제는 미술관이므로 오늘 감상한 것에 대해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근대 예술은 나에게 너무나 버거우므로 대략 패스했다.
그 이유는 근대 예술은 예술적인 면을 보는 순수 예술 장르와 현대 예술 장르와는 달리 "역사"라는 거대한 담론과 엮어 있기 때문이다.
볼수록 그 담론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아직 나의 미흡한 내공으로는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현대의 작가들이 창조한 예술 작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예전부터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왔다.
정답은 없겠지만 내 나름대로 나만의 정의를 내린 것이 있는데 그건 사람의 감정 또는 행동의 변화를 유발하는 것이 예술이다라는 것이다.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할거야'라는 전시는 2명의 작가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비전공자인 내 눈으로 보았을 때 두 작품향은 매우 다르다고 느꼈는데 작품이 하나는 외향적이고 하나는 내향적이라는 것이다.
외향과 내향은 에너지의 흐름의 방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채지민 작가의 작품들은 에너지가 밖으로 분출됨을 느꼈다.
작품들을 보면서 머릿 속에 자연적으로 르네 마그리트와 데이비드 호크니가 떠올랐다.
색감이나 화풍은 다를 수 있지만 초현실적인 느낌과 화면의 구도를 가르는 방법 등이 연상이 되었던 것 같다.
함미나 작가의 작품들은 반대로 에너지가 안으로 차곡차곡 쌓는 느낌이 들었다.
고요하고 정적이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든 생각은, 이렇게 에너지가 안으로 흐르는 작품은 조금 아까운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감정이 움직이려면 작가의 감정을 나도 느끼거나 선망하거나 떠오르거나 해야 하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은 그 공감대를 이루는 대상이 갈리는 듯하다.
봉준호 감독이 말했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거라고.
그럼 그 반대여야 하는 것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려면 에너지가 밖으로 발산해야 하는 것 같다.
그 반대면 에너지가 안으로 수렴되고 고이는 느낌이다.
그 고인 에너지는 누군가는 공감하고 누군가는 마주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듯하다.
그냥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예술은 즐기는 자 모두의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