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글을 쓰지 못했다. 프리랜서 일이 일시적으로 늘어난 데다 우리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귀한 손님은 올해 초 저 세상으로 가신 선배의 강아지 까미다. 예전에 몇 번 선배의 집을 방문했을 때 본 이 강아지는 나를 보면 엄청나게 짖어대곤 했다. 납작 엎드려서 월 월 짖어대는데, 친해지려고 손을 코 근처로 살짝 갖다대도 오히려 더 크게 짖으며 뒤로 물러나곤 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우리집에 왔는데 그저 조용히 내 품에 안긴다. 짖지도 않고, 자리를 펴주자 거기에 그대로 엎드린다. 주 보호자가 사라지고 나니 자신감을 상실하고 어디든 적응해야 한다는 생존본능이 작동하는 것 같다.
주 보호자였던 선배가 지병으로 하늘나라로 가신 후, 선배의 남편(이자 이분 또한 나의 선배)이 장기간 출장을 가실 때마다 누군가에게 맡겨졌다고 한다. 이젠 체념 또는 달관의 경지가 된 것 같다고 선배의 남편분은 말씀하셨다. 이번엔 열흘 정도 우리집에 있기로 했다.
우리 똘이가 말티스에게 흔히 있는 지병인 심장병을 갖고 있었다면 까미는 포메라니안의 흔한 질병인 기관지 문제가 있다. 한번 기침을 하면 매우 오래 기침을 하는데, 처음엔 뭔가 불편한 게 있어서 짖는 소리인 줄 알았다. 벌써 15년 9개월이라니 이 강아지도 나이가 많이 든 노견이다.
까미가 분리불안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심한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나가면 같이 나가겠다고 자기 이동가방에 자리잡고 앉는 정도. 그 외엔 관절염 때문에 잘 걷지를 못하여 내가 들어왔을 때 벌떡 일어나 짖으며 꼬리를 흔들기만 한다.
까미가 마룻바닥에선 전혀 서지를 못하기 때문에 거실에 얇고 큰 이불을 깔아놨다.
까미가 이렇게 와서 곁에 있으니 똘이의 마지막 9개월이 생각났다. 까미는 똘이보단 어리고 심장 상태도 좋아서 똘이와 비교할 순 없지만 노견을 키우던 하루하루의 심정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똘이가 세상을 떠난 바로 직후만큼 자책감에 사로잡히진 않는다. 나는 충분히 똘이를 사랑했고, 아끼고, 함께하려 애썼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사건도 연습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땅에서의 삶이 모두 연습이라면, 리허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한동안 모든 것이 후회됐었다. 먹는 것도 이유식 같은 것을 만들어줄걸,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비싼 액체사료를 먹여주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여 더 알아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똘이는 만성 췌장염을 앓고 있어서 늘 먹는 게 조심스러웠다. 사실 췌장염으로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용케 이겨냈고, 똘이는 내게 1년이라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늙어감을 보여주었다. 강아지 입장에서는 서서히 늙어감이었지만, 인간이 보는 입장에서는 확연히 늙어감이었다. 2kg이었던 강아지가 1.4kg이 된 지는 이미 오래였다. 그래도 한동안 1.4kg을 유지하여 기특하다고 생각했었다. 2024년 3월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을 때 똘이가 목욕을 하고 간지라 컨디션이 저하되어 미용도 못하고 검사도 못했다. 그때 이후로 병원을 가지 않았다. 병원에서도 나에게 오라 하지 않았다. 그저 똘이가 자연스럽게 갈 날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쉽게 포기한 걸까. 똘이가 말을 하지 못한다고 더 많이 해주지 못했던 것 아닐까. 그애가 말을 할 줄 알고,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내게 말할 수 있었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했을 텐데.
똘이가 다시 태어나 내게로 올 수만 있다면 늙어서 근육 때문에 잘 설 수 없을 때 꼭 휠체어를 태워주고 싶다. 나의 마음을 똘이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똘이는 하늘나라에서 선배가 잘 데리고 놀아주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믿으며 나는 오늘 선배의 강아지 까미를 돌보고, 까미와 산책하고, 까미를 아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