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되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허리가 극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제 허리에 있는 암 때문에 나는 평생 허리가 아프겠구나 절망스러웠다. 그래도 나는 걸었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슬픔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열심히 일했던 이유가 모두 사라져버렸다. 미래도 사라지고 똘이도 가고 없다. 난 깨어있었는가. 암 치료 이후 나는 늘 깨어있는 삶을 살려 노력했다. 내가 사는 삶, 내가 하는 선택들을 의식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새 삶이라는 파도에 떠밀려 어느덧 옛 생활과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똘이와 더 긴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하지만 이미 잡아놓은 일 때문에 갑자기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다시 암이라니. 이제 4기라니. 일찍 알았더라면 일은 아주 조금 하고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똘이와 보냈을 텐데....분하고 원통했다. 1년 전, CT에 보였을 때(심지어 이 사실은 나는 모르고 의료진만 알고 있었다), 그때 다른 정밀 검진을 진행하여 그것이 전이암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그때부터 건강관리를 위해 훨씬 더 많은 여유를 가졌을 것이고 똘이와 더욱 긴밀한 1년을 보냈을 텐데....다시 미래를 준비하고 새롭게 펼쳐지는 내 삶을 위해 왕성하게 사느라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암 치료 때보다 훨씬 많아졌던 걸 후회했다. 공교롭게도 똘이가 간 직후 전이 소식을 듣다니....울고 또 울었다. 가슴을 치며 오열했다. 난 눈 뜨고 산 줄 알았는데, 다시 점점 눈이 감겼었구나.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을까. 어찌 이리 바보 같을까. 그렇게 혹독하게 겪어도 금세 망각하다니.
내 맘과는 별개로, 감사하게도 내가 정기적으로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던 일터 두 곳은 나의 상황을 들으시고 양해를 해주셨다. 수업을 하는 강사였기에 급작스럽게 수업을 빼기가 어려웠지만, 검진 때문에 빠져야 할 때, 또는 허리가 아파 급작스레 요청을 드렸을 때도 모두 긴급하게 수업 대체를 해주셨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시간을 조정해주기도 하셨다. 프리랜서이기에 가능하기도 했지만(물론 프리랜서라 더 쉽게 해고될 수 있는 형편이기도 했다), 신뢰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요즘은 암 4기여도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시며, 환자를 차별하지 않는 좋은 경영자 및 매니저 분들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오픈하고도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혜택을 얻고 배려를 받았다. 병을 몰래 숨기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이 얼마나 큰 마음의 자유를 주는지!
마침 내가 정기적으로 다니는 대학병원은 나의 일터와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일터에서 버스로 2-3정류장이다. 조직검사를 위해 오후 수업을 마치고 저녁 7시경 입원을 했다. 조직검사 전날은 딱히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저녁에 입원을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대신 응급실 원무과를 통해 입원을 해야 했다. 퇴근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 병원이라는 점에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큰 수술도 아니고 힘든 항암도 아니었기에 2박 3일간 휴가를 얻은 것 같기도 했다. 응급실 문앞에서 여행 캐리어를 들고 엄마가 서계셨다. 응급실은 고요한 적막 가운데 한두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곳을 통과하여 올라간 곳은 4인실 아늑한 입원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창가자리였다. 사람들(입원 환자들)이 함께 있다는 것이 내게 위안이 되었다.
그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똘이의 떠남, 그리고 나 자신의 전이 소식....모든 일상의 루틴들을 소화하면서 쓰나미 같은 이 사건들을 감당하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몹시도 벅찬 일이었나보다. 온갖 일상의 소음 속에서 이 결정적인 생의 면모들을 맞닥뜨려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일상이 일시에 음 소거 되고 아무 할 일도, 돌볼 대상도 없이 나 혼자 덩그라니 남겨졌더라면 그 또한 내게 닥친 삶의 무게에 짓눌릴 수도 있을 위험한 순간이었다. 적절한 때, 나를 돌보아주는 친절한 간호사들과, 말은 나누지 않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환자들이 주변에 있고, 창밖이 내다보이는 쾌적한 병원 환경, 그리고 수술만큼 마음을 무겁게 하지는 않는 검진과정 등이 잠시 호텔에 들어와 쉬어가는 휴가 일정처럼 느껴졌다. 그저, 의무 없이, 슬픔에 짓눌릴 필요도 없이, 나를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시공간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마음이 가벼웠다.
조직검사는 이튿날 진행되었다. 뼈 조직검사는 다른 조직검사와는 또 달랐다. 드릴 같은, 날카로운 둔기가 내 오른쪽 엉덩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부분마취를 해서 명확한 날카로움은 느낄 수 없었지만 살을 파고들며 커다란 드릴 같은 것이 들어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CT에 들어갔다가 나온 후 다시 드릴을 더 깊숙이 돌리는 동작이 반복되었다. 나는 그사이 만세를 하고 쥐죽은 듯 가만 엎드려 있어야 했다. 어떤 분은 그 조직검사를 할 때 통곡을 하여 검사하시는 분이 당혹스러워 실수를 하기도 했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고(검사하시는 분도 정확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얼마나 부담스러울 것인가), 조직검사 때 뼈를 잘못 건드리면 하지마비가 될 수도 있다는 무서운 설도 있었다.
나는 만세를 하고 엎드려 주기도문을 계속 외웠다. 그렇게 5-6번 CT에 들어갔다 나오고 드릴같은 기계를 계속 몸의 중앙 부분으로 돌리자 드디어 어느 시점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충돌이 감각으로 느껴졌다. 내 척추와 그 기계가 닿은 느낌. 마취 상태에서도 뭉툭하면서도 강렬하게 느껴지는 둔기와 내 뼈의 불쾌한 만남. 드디어 채취가 되었겠구나!
마취가 풀리면 뼈를 건드린 것이기에 통증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다행히도 큰 통증을 느끼진 못했다. 자세를 고쳐 누울 때 통증을 좀 느꼈을 뿐이었다.
2주 뒤 결과를 들으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