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망했수다!

by arete

어제는 정기 진료를 보았다.

한 달 전 영상 검진을 본 결과도 확인하고 약도 타는 시간이다.


작년 10월 똘이를 떠나보내고 1주일이 조금 지난 어느 날, 5년 완치 판정을 듣고자 의사선생님에게 드릴 감사카드와 쿠키를 사가지고 병원으로 향했다. 똘이의 죽음을 생생히 목격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2019년 7월 유방암 3기로 진단받고 최대한 할 수 있는 모든 표준치료를 1년 여에 걸쳐 마쳤다. 항암, 수술, 방사선 치료....그 1년 동안 처음으로 일을 완전히 쉬었고, 치료에 전념했다. 막상 일을 그만두고 나니 맘이 후련했다. 일을 그만두고도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때는 마침 코로나 시기여서 나는 똘이와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딘가에 갈 수도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후 5년간 6개월 정기검진 때마다 “깨끗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나는 점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치료 후 첫 1년은 극도로 긴장하며 깨끗하고 좋은 것만 먹으려 했고 열심히 운동했다. 먹는 경구용 항암제도 생각보다 내게 큰 부작용을 가져오지 않았다. 경구용 항암제의 예상되는 부작용 때문에 여러 과를 전전하며 정기검진을 받았으나 나는 늘 깨끗하다는 결과를 듣고는 행복해하며 집에 돌아오곤 했다. 점점 조금씩 일을 맡게 되었고, 내가 우려했던 바와 달리 치료 이전보다 더 좋은 여건으로 프리랜서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 여유도 적절했고, 일도 만족스러웠고 보상도 나쁘지 않았다. 1년의 치료기간 동안에는 절망한 적도 있었다. 항암을 6개월 동안이나 했는데 막판에 가서 너무 지쳐서 과연 이 과정에 끝이란 있을까 하고 우울해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흐르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아팠던 기억이 점점 사라졌다. 아프지만 않아도 살 것 같다는 생각도 점차 희미해졌다. 물론, 아프기 이전과 이후의 생활은 확실히 달랐다. 늘 건강을 자신하던 시절이 지나자 일상에 얼마나 감사할 것들이 많았는데 어떻게 그걸 몰랐는가 후회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들만 동경하며 지냈던 숱한 날들에 대해 한탄했다. 그리고 다시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말자며 하루하루를 나름 행복해하며 지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다시 온전한 일상을 회복했고, 점차 일도 많아졌다. 왕성한 옛 시절처럼, 내게 오는 일감을 뿌리치지 않고 다 맡은 건, 똘이의 마지막 해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땐 똘이가 그 와중에 갈 줄 몰랐다. 상황이 닥쳐야 알 정도로 나는 어리석었다. 2024년 여름 그 무더위에 나는 매일매일 일을 나갔고, 몸을 의식하면서도 이쯤은 할 수 있을 거라 믿었고,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에서 와인 한 잔 또는 맥주 한 잔 정도를 했다. 예전보단 훨씬 적은 양이었지만, 그렇게 술 한 잔 하는 날들이 조금씩 늘어갔다. 나는 정말이지, 와인과 맥주를 너무도 좋아했다. 특히 레드와인. (물론 여름엔 가벼운 화이트와인도 너무 좋았다.) 하루의 긴장을 풀어주고, 혀끝에 감도는 그 은은하고도 시고 묵직한 알콜 맛은 내게 도파민을 분비하기에 충분했다. 더위에 익어가는 한여름 동안 지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반신욕을 하며 와인 한 잔과 함께 태블릿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낙원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똘이가 추석 연휴 시작부터 마지막으로 가고 있는 증상을 보였고, 2주 동안 나는 극도의 긴장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그 긴장이 가시자마자 내게 다가온 소식은 “다시 검사를 해보자”는 의사의 명령(?)이었다. 요추뼈에 무언가가 보이는데 그것이 커졌다며 MRI를 찍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곤 한 달 뒤로 검진 날이 잡혔다.


나는 설마 했다. 지금까지 계속 “깨끗합니다” 소리만 들어와, 이제 드디어 6개월 검진을 벗어나 1년 검진으로 들어가겠지 하고 생각했던 터였다. 몸은 이제 내 주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었다. 몸은 이미 해결된 것이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똘이의 부재와 그에 대한 애도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학병원의 검진일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개인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다. 검진 날 바로 나온 결과는 의사선생님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어둡기 그지 없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요추에 한 개, 골반에 두 개, 암이 전이된 것 같다, 빨리 대학병원에서 다른 영상검진들을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날 이 얘기를 들으러 간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깨끗하다는 검진 결과만 들었는데, 별 일 아닐 거라고 믿었다.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하여 한번 영상을 찍어보자는 얘기인 줄 알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개인병원 의사의 표정을 보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 길로 대학병원에 전화하여 진료예약을 응급으로 잡았다. 다행히도 내가 개인병원에서 받은 검진결과를 반영하여 재빨리 다른 검진 날짜를 잡아주었다. 드디어 결과를 들으러 간 날, 평소 카랑카랑하고 무섭고 직설적인 의사선생님은 어쩐지 연민 섞인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요추에 전이가 되었다고. 이제 4기가 되었다고. 지금부터는 종양내과로 넘어가서 진료를 받게 된다고. 나는 물었다. “1년 전에도 있었던 거라고 하셨는데 왜 1년 전에는 암이라고 판명이 되지 않은 건지요?” 그랬더니 의사선생님은 인내심을 거두고 예의 그 카랑카랑하고 매서운 톤으로 돌아왔다. “그땐 너무 작아서 암이 아닐 가능성이 있었지만 커졌으니 암인 거예요!” 한마디로 이미 1년 전부터 암은 내 요추에 똬리를 틀고 정착했던 것인데, 그땐 일일이 더 자세한 검진을 하지 않았고, 이것이 커지자 다른 검진들을 하여 암으로 확정 짓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와인과 맥주를 다시 조금씩 즐기고 있는 동안, 그리고 일을 점차 늘리는 동안 전이된 암은 조금씩 내 안에서 커지고 있었다.


젠장!

젠장 소리가 속에서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폭싹 망했수다!


펫씨티 결과의 사진을 보면서 요추 쪽에 반짝반짝 빛나는 동그란 공같이 생긴 나의 암을 들여다보며 이제 나는 옴짝 달싹 못하는 길로 들어섰구나 예감했다. 저 사진 속의 공은 저토록 빛나며 예쁜데 내 몸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거라고?


월, 수, 금 연재
이전 09화이 모든 것이 리허설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