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무너진 문명 속에서, 사라진 얼굴을 찾았다

by 헬로 보이저


파르테논에 섰을 때 나는 알았다.

아름다움은 남아 있었지만,

그 속에 있어야 할 얼굴들은 없었다.


“그리스는 왜 그토록 비어 있었을까?”


아테네에서 본 것은 기둥뿐이었다.

그러나 몇 달 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나는 그리스의 얼굴을 보았다.


손끝, 눈매, 주름, 미소까지 살아 있는 돌.

그 돌은 어째서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것은 단지 약탈이 아니라,

미에 대한 광기였고,

문명을 ‘가진 자’가 되기 위한 집착이었다.


박물관의 돌조각들은 말이 없었지만,

그들을 옮긴 인간들의 욕망은 선명히 들렸다.


노르망디의 바다, 함부르크의 거리, 런던의 혼란.

유럽은 눈부셨지만, 그 찬란함은

늘 무너진 것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광장 하나, 조각 하나에도 싸움의 흔적이 있었고

침묵으로 전해지는 역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과거를 지우지 않았고,

기억을 건축물 속에 남겨두었다.


“그들은 왜 싸웠을까?”

이제 나는 그 질문을 바꾼다.


“나는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걸까?”


알고리즘이 사람을 거르고,

혐오가 벽을 세우고,

분열이 정당화되는 시대.


기후위기, 인공지능, 전쟁과 이주—

이제 이 모든 건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삶과 이어진 이야기다.


루브르와 바티칸은 예술을 보존했지만,

감정과 맥락은 박물관에 없었다.


그건 내가 들이쉬는 공기 속에 있었고,

지키려는 말속에 있었고,

지금, 내가 꾹꾹 눌러쓰는 이 문장 안에 있었다.


나는 그 바다를 보며 깨달았다.

햇살처럼 눈부신 유럽이었기에,

나는 더 깊이, 더 정직하게

그 역사와 마주해야 했다.


나에겐 이제,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새로운 구조,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글은 다음 세대를 위한 감정의 기록이며,

그 이름으로 남기는 윤리의 문장이다.


이제, 역사는 박물관에만 있지 않다.

그건 나의 질문 속에 있고,

나의 고백 속에 있으며,

지금 이 문장 안에 있다.


나는 무너진 문명 속에서,

사라진 얼굴을 만났다.


다음 이야기 – 캐나다 밴쿠버, 새로운 질문을 향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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