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받는 건강검진
저번주 목요일에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이제는 한 번쯤은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만의 결심이었다.
그날부터 식단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목요일엔 평소처럼 흰밥과 생선을 먹었고,
금요일엔 흰밥과 국, 아주 간단히 먹었다.
속이 놀라지 않게 천천히 줄여나갔다.
토요일부터는 흰 죽과 계란찜으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같이 넣어버렸다,
흰밥과 계란을 함께 넣었더니
의도치 않게 ‘계란죽’이 되었다.
노란빛이 어쩐지 포근해서
그냥 그렇게 먹기로 했다.
속을 비우는 일은
마음을 비우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그래도 이번엔 몸부터 정돈하기로 했다.
10년 만의 첫 건강검진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일요일엔 흰 죽만 먹었다.
냄비 안의 쌀알들이 묘하게 단정해 보였다.
아무 맛도 없는데,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몸이 고요해질수록
생각도 잠잠해졌다.
월요일 아침 8시 30분,
검진장 문 앞에 섰다.
밤새 두 번, 1리터씩 물약을 꿀꺽꿀꺽 마셨다.
밤사이 화장실만 10번은 간 거 같다.
아침은 초 겨울처럼 추웠다
날씨 변화에 가을이 사라지는 거 같아서 마음이 쓸쓸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검사를 시작했다.
피를 뽑고 간단한 검사가 끝나고 대장과 위 내시경을 받으려고 앉아있었다
대장 내시경실 앞에 앉아 있는데,
옆방에서 한 남자분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순간 긴장이 확 올라왔다.
“저도… 저렇게 되나요?”
내가 묻자 간호사님이 웃었다.
“전부 다 그렇진 않아요. 너무 걱정 마세요.”
그 말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에 잠드실 거예요’ 하는 간호사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정말로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희미하게 눈을 뜨니 오른팔에서
수액 라인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끝났어요. 일어나셔도 돼요.”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모든 게 조금 멀게 느껴졌다.
그래도, 무사히 끝났다. 검사실 불빛 아래에서
“이제 진짜 관리할 때가 됐구나” 하는
작은 다짐이 생겼다.
미국에 살 때는
이런 ‘건강검진’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미리 점검하고, 예방하고,
검진이 끝나면 몇 시간 안에
카톡으로 내시경 사진까지 보내준다.
초스피드의 놀라움.
이렇게 빠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과연 또 있을까 싶었다.
이번에 알았다.
한국은 비용도 저렴하다.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외국에 살던 사람들이
나이 들면 한국으로 돌아와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거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몸은 비워냈지만, 마음은 채워졌다.**
끝나고 나오는데 병원에서 호박죽과 호두 두유를 줬다
와 이런 것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주다니
우리나라 병원 시스템에 많이 놀랐다.
이제 나는 건강한 몸으로
다시 길을 준비한다.
나를 지켜주는 이 나라 안에서,
조용히, 단단하게 자라갈 것이다.
몸을 비우는 며칠 동안,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더 깊이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