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빛이 한 사람의 눈빛을 더 선명하게 만들던 순간
월요일 정오, 데이비드의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햇빛이 마당의 먼지를 금빛으로 띄워 올리던 때였다.
낯선 차 한 대가 소리 없이 멈추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한 여인이 현관을 향해 걸어왔다.
그녀의 이름은 도나였다.
멀리서 보기엔 조금 왜소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오면 알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누군가의 상처를 받아낸 사람에게서만 나는
그 단단한 평온이 몸 전체에 스며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빛은 놀라울 만큼 맑았다.
마치 마음속 깊은 곳이 한 번도 탁해진 적 없는 사람처럼.
도나는 데이비드의 친한 친구이자 상담사였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받은 폭력으로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겉으로는 유머도 많고, 농담도 잘 하지만
특정 순간엔 문득 멀어져 버리는
부서진 마음의 결이 남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 상처를 천천히, 아주 오래 들여다보며
다시 연결해 주는 사람이 도나였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문턱을 넘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살짝 가라앉고, 부드러워졌다.
나는 부엌에서 돌아서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낯선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의 거리감이 아니라
이미 온도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조용히 서로를 인식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챙겨 온 작은 선물을 건넸다.
믹스커피 와 얼굴 팩.
도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놀라울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계산도, 조심스러움도 없었다.
그냥 ‘고맙다’는 마음이 맑게 비쳤다.
그즈음 데이비드는
내가 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무엇을 보고 느끼려 하는지
짧게 전해주었다.
도나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천천히, 따뜻하게 말했다.
“Pure people knows pure people.”
맑은 사람은 맑은 사람을 알아봐요.
그 말은
햇빛처럼 서서히, 깊게, 내 안으로 내려앉았다.
도나는 돌아가기 전 다시 내게 말했다.
시간이 허락되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그리고 언젠가 꼭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며
사람을 다시 일으키는 리하브 센터 (복지 센터) 이야기도
건네주었다.
그날 오후,
마당에 내려앉은 햇빛이 길게 늘어졌다.
나는 그 금빛 속에서
도나의 눈빛과 목소리를 오래 떠올렸다.
폭풍을 지나온 사람만이 갖는 단단함.
그리고 그 모든 폭풍을 지나왔는데도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남는 순도.
이 넓은 호주 아웃백에서
사람의 마음은
결국 또 사람을 향해 길을 낸다는 걸
그녀가 조용히,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