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바오, 철과 예술 사이에서

과거의 페허 위해 피어난 문화의 꽃

by 헬로 보이저
네르비온 강변 미술관 지구. 빌바오 마리나 (선착장) 구겐하임 미술관 외관

네르비온 강과 구겐하임 뷰. 푸피 (Puppy) 꽃으로 만든 강아지. 조형물살베 다리



빌바오에 첫 발을 디딘 순간,

어딘지 모를 쇳내가 코끝을 스쳤다.
썩은 물 냄새 같기도, 오래된 시간의 향 같기도 했다.
도시는 조용히 자신을 소개하는 중이었다.

트램을 타고 도심을 천천히 훑었다.
곧게 뻗은 철로를 따라,
낯선 풍경이 스르르 창밖으로 흘러내렸다.

빌바오는 철강 도시였다.
무거운 산업의 무게가 남아 있는 곳.
하지만 그 안에서 예술이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 섰을 때,
시간이 휘어진 듯한 곡선미가 눈을 사로잡았다.
티타늄 외벽은 햇살을 머금고
은빛으로 숨 쉬고 있었다.

거대한 거미 ‘마망(Maman)’은
이 도시의 과거를 감싸 안듯 우뚝 서 있었고,
꽃으로 덮인 강아지 ‘Puppy’는
조금은 장난스럽게, 여행자를 반겼다.

강 옆 산책길을 따라 걷는 동안
비스케이 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했다.
도시의 상처가 바람에 실려
조금씩 씻겨 나가는 듯했다.

카스코 비에호의 골목,
핀초스를 고르며 햇살에 앉은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잔잔한 미소.
선택한 접시를 바라보던 그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바텐더가 조심스럽게 건넨
바스크 치즈케이크 한 조각.
받는 손길은 부드럽고, 시선은 따뜻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그날의 인사는
눈빛과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트램에서 내려
Zubizuri 다리를 건넜다.
유리 곡선 다리는 감정을 강 위에 띄워 보내는 듯했다.
그 아래로는 시간과 상처, 그리고 희망이 함께 흘렀다.

걷고 또 걷는 길,
‘푸니쿨라(Funicular)’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재미있을 것 같아 표를 샀지만,
자동발권기에선 표가 인식되지 않았다.
허둥지둥 스페인어로 뭐라도 말해보려 애쓰던 순간,
노신사 한 분이 다가와
표를 대신 스캔해주며 미소 지었다.

“첫 푸니쿨라 탑승이 쉽지만은 않지?”
그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짧은 경사길을 오르는 동안,
시간도 함께 올라가는 듯한 기분.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빌바오는 살아 있는 지도처럼 펼쳐져 있었다.
"BILBAO"라는 글자가
하늘 아래 당당하게 서 있었다.

도시의 중심에서
한때 얼마나 깊은 아픔이 있었는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아픔을 예술로 끌어안으며
다시 태어난 도시라는 것도.

빌바오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중심이자
산업혁명기 철강과 조선업으로 부흥했던 도시였다.
그러나 20세기 말, 산업 쇠퇴로 침체기를 겪었다.

1997년,
프랭크 게리의 손에서 탄생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구겐하임 효과(Guggenheim Effect)’는
도시 재생의 상징이 되었고,
빌바오는 과거를 지우지 않고
예술로 껴안으며 미래를 만들어갔다.

그날,
다시 재건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배웠다.

폐허 위에 꽃을 심는 사람들처럼
슬픔 위에 예술과 꿈을 심고 싶은 마음.

이 도시가 말하듯—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위한 밑그림이야.”

그리고 지금,
매일 새롭게 그려지고 있는 삶.
이 여행은
마음이라는 도시에 예술을 다시 심고 있다.


푸니쿨라 탑승장 (Funicular de Artxanda) 빌바오 사인 (Bilbao 철제 조형)

마망 (Maman) – 거대한 거미 조형물 빌바오 트램 (Bilbobus)


도냐 카실다 이투리사르 공원. 네르비온 강변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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