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시작된 하루
보스포루스 해협. 톱카프 궁전
왼쪽 술탄 아흐메트 자미. 탁심 광장 관광버스
유럽을 한 바퀴 돌고,
도착한 항구는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이스탄불이었다.
배는 천천히 보스포루스 해협을 향해 나아갔고,
그 위로 도시의 실루엣이 안개처럼 떠올랐다.
왼쪽은 유럽,
오른쪽은 아시아.
나는 제국의 혈관 위를 가로지르며
단순한 도시가 아닌,
문명의 경계선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보스포루스 해협 위를 지나는 순간,
나는 도시가 아니라 제국의 혈관 위에 떠 있었다.
왼쪽은 유럽,
오른쪽은 아시아.
나는 그 사이에서 커피를 들고 있었다.
바다는 거칠지도, 조용하지도 않았다.
멀리서 유람선이 지나갔고,
그 뒤로 아야 소피아가 천천히 드러났다.
“여긴 사진으로는 설명이 안 돼.”
그 순간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도시보다 진한 향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나는 7시간을 걸었다.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 발을 디뎠다.
푸른 모스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무언가가 나를 멈춰 세웠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도 소리.
터키의 공기엔 음악이 아니라 영혼이 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걷고,
새들은 천천히 날아올랐다.
그건 관광지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믿음의 궁전’ 같았다.
그랜드 바자르 안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방향을 잃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램프,
가죽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는 재킷들,
은은하게 퍼지는 로즈향,
그리고 손짓하며 다가오는 상인들.
처음엔 긴장했지만, 금세 그 안에 녹아들었다.
흥정은 게임처럼,
눈빛은 언어처럼.
나는 하나의 목걸이를 손에 들고,
그들이 설명하는 이야기보다
더 깊은 상상을 해버렸다.
갈라타 다리 위를 걸으며
다리 아래에선 낚시꾼들이 하루를 보내고,
위에선 여행자들이 셔터를 누른다.
하지만 나에겐
이곳은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도시의 두 심장을 이어주는 ‘맥박’ 같았다.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의 역사한 줄 요약
-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며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불빛은 꺼지고, 이스탄불이 오스만의 수도가 된다.
- 술탄 메흐메트 2세는 하기아 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꾸고,
세계의 중심을 이 도시에 세웠다.
- 이후 약 600년간, 오스만 제국은 유럽·아시아·아프리카를 아우르며 번영했다.
- 보스포루스 해협은 무역의 심장, 블루 모스크와 톱카프 궁전은 제국의 위엄,
갈라타 다리와 그랜드 바자르는 일상과 세계가 만나는 장소였다.
- 1923년, 오스만 제국은 막을 내리고
이스탄불은 현대 터키 공화국의 문화적 심장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터키 사람들이 한국 사람에게 유독 따뜻한 이유:
6.25 전쟁 때, 형제의 나라로 함께 싸운 전쟁의 기억이 아직도 그들 마음에 남아 있다.
그래서 한국인을 보면, 그들의 부모와 할아버지 세대를 기억하며
미소 짓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형제의 나라’라는 말은 그냥 수사가 아니다.
터키의 거리에서, 나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느꼈다.
하기아 소피아. 갈라타 다리
돌마바흐체 궁전. 히포드롬 광장
히포드롬 광장 술레이마니예 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