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안개, 그리고 두 번의 여정
왈비스 베이 항구. 왈비스 베이 플라밍고 석호
왈비스 베이 바다사자해변. 왈비스 베이 소금길 위에서
스와코프문트 시내 거리. 왈비스 베이 전망 선착장
2025년 3월 21일, 나미비아 월비스 베이
케이프타운에서 북쪽으로, 신비한 안개의 바닷길을 따라 이틀.
그 긴 항해 끝에, 우리는 나미비아라는 낯선 대륙에 닿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맞은 건 보랏빛 안개였다.
공기마저 낯설게 느껴질 만큼 이국적인 대기.
남극에서 밀려온 차가운 기운이 피부를 스쳤다.
남아공에서 불어오던 바람과는 전혀 다른 숨결이었다.
선착장엔 수십 명의 가이드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이름도, 번호도 쓰여 있었지만,
그중 누가 진짜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우리는 그들 중 한 사람을 믿고 미니밴에 올랐고,
8명의 낯선 이들과 함께 출발했다.
하지만 차량은 목적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고,
그날 몇 팀은 결국 경찰서를 찾아가야 했다.
우리가 탄 차 역시 방향이 이상했고,
그 순간부터 여행은 우리를 조용히 시험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안내도, 설명도 없이 달리는 길 위에서
우리는 그제야 이 아름다운 대륙에도
복잡한 현실과 긴장이 있다는 걸 조금씩 체감하기 시작했다.
골목을 돌아 들어선 곳은 마치 볼리비아의 소금사막 같았다.
광활하고 생소했다.
그곳에서 나는 나미비아의 첫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와 햇살 사이에서,
이곳은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길가엔 플라밍고 떼가 줄지어 서 있었다.
분홍색 생명들이 물비늘을 따라 춤추듯 흔들렸다.
그 순간, 이 대륙은 결코 잊혀진 땅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다음 여정지는 스와콥문트.
붉은 사막 위에 유럽풍의 파스텔 도시가 세워진 곳.
마치 독일의 오래된 마을이, 아프리카 해안으로 순간이동한 듯했다.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카페들과 맥주의 향.
간판은 독일어였고, 거리는 아기자기했지만—
그 이국적인 거리에서 만난 건,
붉은 흙과 버터를 몸에 바른 힘바족 여인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았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필요 없었다.
북쪽에서 팔찌를 팔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나는 그 손끝에서 시간을, 구슬들 사이에서 역사를 읽었다.
이 땅엔 말보다 깊은 역사가 있었다.
수천 년 전부터 바위에 그림을 남기던 산족이 있었고,
언젠가부터는 외부의 손이 들어와 이 풍경을 재단했다.
스와콥문트의 아기자기한 건물들 뒤엔,
독일 제국이 남긴 식민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화려한 외관 너머엔 쫓겨난 사람들과 침묵 속의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나미비아는 다시 일어섰고,
이제는 그 아픔 위에 조용한 숨결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 , 가이드와의 작은 실랑이 끝에 투어는 일찍 끝났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스스로 여행사를 찾아 나섰다.
정직한 눈빛의 현지인을 만나,
이번엔 4x4 트럭을 타고 진짜 사막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샌드위치 하버.
붉은 사구와 바다가 만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경계.
가는 길엔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붉은 땅과 하얀 모래,
그리고 마침내, 파도가 사막의 발밑을 적시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이 바로 샌드위치 하버였다.
햇살은 붉은 언덕을 황금빛으로 물들였고,
바다는 아무 말 없이 모래를 안고 있었다.
누군가는 조용히 바다로 걸어 들어갔고,
누군가는 모래 위에 가만히 주저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풍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였다.
우리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곳을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세상 어딘가엔, 사막과 바다가 함께 숨 쉬는 곳이 있다는 걸.
힘바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