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 옆, 첫날 밤 잠 못 들던 이야기
세인트 메리 대성당 외관 (St Mary's Cathedral)
바늘두더지 (Echidna) 타롱가 동물원 – 기린과 얼룩말
한국을 떠난 지 열 시간쯤 되었을까.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 트램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남반구의 첫 풍경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버 브리지가 가까워질수록, 여행이 진짜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호텔은 그 다리 옆, 오래된 퍼브 위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드니의 바다는 더 깊었고, 하늘은 더 푸르렀다.
하버 브리지 근처 호텔을 예약했는데,
아래층에 퍼브 레스토랑이 있었다.
음악은 새벽까지 이어졌고, 창밖의 소음에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눈을 떴다 감았다.
결국 호텔을 옮겼고, 그 조용한 방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 순간, 여행은 관광이 아니라 회복이 되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오페라 하우스는 생각보다도, 상상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마치 바다의 숨결로 만든 조각 같았고,
어딘가 내 마음도 그 곡선 위에 얹힌 듯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요해졌다.
공연을 보기 전, 건물 밖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파도처럼 겹쳐진 하얀 지붕은 햇살을 품고,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난 그곳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봤다.
조명은 바다보다 반짝였고, 무대는 숨결처럼 섬세했다
하지만 내 발걸음을 이곳으로 이끈 건
단지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2019년, 산불로 무너진 호주의 숲을 TV로 봤다.
코알라와 캥거루가 불 속에서 타들어가던 모습.
그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꼭 와야만 할 것 같았다.
복구 중인 숲은 여전히 탄 냄새가 났다.
새벽에 커피 한 잔을 들고 걷다 캥거루를 불렀더니, 정말 나타났다.
놀랍고 다정한 순간이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아도, 자연이 내게 다가와준 느낌이었다.
블루마운틴에서 야호를 외치자 쿠카바라가 울었다.
그 소리는 마치 "잘 왔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날은 참 이상했다. 울컥하진 않았지만, 가슴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가는 길에 바늘두더지를 마주쳤다.
작고 느린 움직임, 뾰족하지만 무해한 몸짓.
그 순간, 호주가 나에게 장난처럼 건넨 인사 같았다.
괜히 웃음이 났다.
밤엔 반딧불을 보러 조용한 산으로 갔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빛들이 숨을 멈추게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바라보며, 천천히 마음을 비웠다.
높은 빌딩, 하버 브리지,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도시 밖, 맨발로 걷는 사람들과 작은 섬.
예전의 나처럼. 이제는 변했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따뜻했다.
이곳에서 다시 다짐했다.
지구를 더 많이 사랑하겠다고. 기록하겠다고.
언젠가 호주에서 한 달쯤 살아보겠다고.
그날 이후로 매일 조금씩 걸었다.
발은 아팠지만, 마음은 익숙해졌다.
그 첫 걸음을 시드니가 받아주었다.
예상보다 훨씬 근사했던 도시.
그게 시드니였고, 그게 나였다.
세자매 바위 블루마운틴. 젠올란 동굴 입구
시드니 타워 전망대에서 본 도시 전경. 시드니 하버 시티 뷰 (하버 브릿지 방향)
블루마운틴 열대우림. 트레일블루마운틴 전망대에서 본 협곡
엑서터 스톤 하우스. 반더눈 숲길 – 야생 캥거루 서식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