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마운틴과 라이온 헤드 사이
챕먼스 피크 전망대. 하우트 베이
뱀부스 해변. 희망봉
볼더스 비치 입구. 펭귄 서식지
듀커섬 (물개섬) 워터프런트 항구. 빅토리아 앤 알프레드 워터프런트
나는 언젠가
아프리카 대륙의 끝,
희망봉에 서고 싶었다.
바람이 끝나는 그곳에서
희망은 다시 시작된다고 믿었으니까.
그날이 오늘이 됐다.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선,
그 옆으로 길게 누운 테이블 마운틴.
이곳은 언제나 ‘지구상 가장 아름다운 장소 100선’에 빠지지 않았다.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던 도시. 케이프타운.
한낮의 햇살 아래 크루즈에서 여행자들이 내리고,
가이드는 조심스럽게 일정을 바꾸자고 했다.
“지금 테이블 마운틴은 사람이 너무 많아요.”
현명한 생각이었다, 대신 발길이 닿은 곳은 캠프스 베이.
에메랄드빛 물결과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이
묵은 불안을 천천히 녹여내던 해변.
멀지 않은 바닷길 끝에는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서쪽 끝.
지구의 땅이 마지막으로 숨을 쉬는 경계.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새롭게 시작되는 느낌이 피어올랐다.
세 달 전, 남미의 가장 남쪽 — 우수아이아에서
펭귄들과 함께 바람을 맞았던 그 기억이
이 순간 겹쳐졌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대륙의 끝.
아프리카의 희망봉에 발을 딛고 선 순간.
지구의 두 끝을,
하나의 마음으로 이어내는 여정 속에서
감정은 말없이 벅차올랐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그날은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곳.
그 여운을 안은 채 이동한 다음 목적지는 볼더스 비치.
바위 사이를 오가는 작고 귀여운 아프리카 펭귄들이
맑은 물속으로 뛰어들고,
그 장면에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생명의 소중함이 작고 둥근 발끝에서 느껴지던 순간.
그리고 마침내, 테이블 마운틴의 정상에 도착했다.
케이블카는 천천히 오르며 도시와 대서양을 내려다보게 했다.
멀리 희망봉이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 속에서
하루의 감정이 정리되어 갔다.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 틈에 섞여,
말없이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정상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저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의 한 구석이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2부 — 산의 그림자 아래에서
그러나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도
오랫동안 외면되었던 진실이 존재했다.
케이프타운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였다.
하지만 1948년부터 1994년까지,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공식적인 인종 차별 정책을 시행했다.
흑인과 유색인종은 백인과 분리된 삶을 강요받았고,
공공시설, 학교, 교통, 심지어 해변과 벤치 하나마저도
함께 사용할 수 없었다.
테이블 마운틴은 모두가 볼 수 있는 산이었지만,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산은 아니었다.
챕먼스 피크 드라이브와 같은 해안 도로는
흑인 운전자에게 금지된 길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조차, 누군가에겐
‘도달할 수 없는 그림’이었던 시절.
도시 한복판엔 디스트릭트 식스(District Six)라는 지역이 있었다.
수천 명의 유색인종과 아시아계 주민들이
오랜 시간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던 곳.
하지만 정부의 강제 철거 명령 아래
그들의 삶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지금 그 자리는 텅 비어 있다.
기억을 지우지 않기 위해 만든 작은 박물관만이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산 위에선 바람도 잠시 말을 아끼는 듯했다.
자연은 여전히 장엄했고,
그 장엄함 아래에 있었던 상처들은
묵묵히, 그러나 확실하게 존재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마주한 하루의 끝,
남미의 끝에서 아프리카의 끝까지
서서히 이어져 온 여정이
한 줄기 빛처럼 마음속을 지나갔다.
그곳은 단지 아름다운 여행지가 아니라,
상처 위에 피어난 희망의 도시였다.
언젠가,
이곳의 바람이 더 많은 이들의 가슴속으로
자유롭게 불어가기를.
테이블 마운틴 위에서 내려보는 전경
씨 포인트 벤치. 테이블 마운틴 케이블카
그린마켓 광장. 세인트 조지 대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