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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Oct 24. 2021

엄마, 그 누구도 아닌 나

한 번도 엄마를 꿈꿔보지 않았던 나는 엄마가 되었다. 워킹맘도 아니고 다시 돌아갈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지, 중국에서는 어떤 도시로 이동하게 될지, 예측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어떤 것에도 쉽게 발을 내딛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평범한 아이 둘 엄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정체되어 있는 내 모습을 견딜 수 없던 때가 있었다. 해외에서 사는 삶, 그럴듯한 추측 속에 나를 숨기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면 그만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실패를 입 밖에 내지는 못했지만, 전업맘의 삶을 실패로 여겼는지도 몰랐다.


엄마로만 살아가는 삶은 그래서 고됐다. 아무리 열심히 하루를 살아내도 어쩐지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고 실패에 가깝게만 느껴졌다.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던가, 아니면 자식 교육을 훌륭하게 시켜야만 엄마로서의 삶이 성공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삶이 정체되어 버리고 말았다 여겼던 그때, 나는 오히려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엄마가 아닌 나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나 스스로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여겼던 그때, 처음으로 해야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으며,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진정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부모 세대에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가 있었지만, 요즘 엄마들은 다르다. 엄마도 엄마 사람이고, 하나같이 능력자들이다. 그와 더불어 '나'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며,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 하나의 특별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 말에 물론 동의하지만, 한 번쯤은 함께 하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가족,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이란 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밥 먹으라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해야 식탁에 올라오는 아이들을 보며 속이 터진다. 남편이 출장 가는 날 며칠 동안 독박 육아를 하며 곡소리가 절로 나기도 한다. 아이가 많이 아플 땐 애가 타다가 결국 내가 몸져눕는다. 아이가 어릴 땐 그냥 예뻐해주기만 하면 됐는데 조금 크면 훈육도 해야 하고, 학교에 가면 숙제도 봐줘야 한다. 수학 문제를 봐주다가 뒷골이 당기기도 한다. 거울을 보면, 보톡스 생각이 나지만 생각만 하고 병원에 가는 건 미뤄서 주름이 깊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더 좋은 엄마, 아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나만 생각했던 이기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너희의 소중함을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소중히 여겼을 부모님에 대하여, 이 세상의 아이들에 대하여,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하여 눈을 돌려볼 수 있게 된다. 만약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에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눈을 돌리지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의 탓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기 마련이지만, 모두가 다 자기 자신만을 특별하게 여기는 세상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힘들면 서로에게 잠시 기댈 수 있고, 지치면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우리들을 꿈꾼다. 어딘가 조금씩 하자가 있는 우리들이지만, 다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나 역시 부족한 엄마이지만, 함께라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쓰고 싶었던 글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엄마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 누구도 아닌 고유한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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