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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Dec 03. 2020

첫째는 쉬웠고, 둘째도 쉬울 줄 알았던

실수를 마주하다

첫째도, 둘째도, 1월의 겨울 아기로 태어났다. 둘째는 원래 12월 말이 예정일이었지만 예정보다 일찍 나올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1월을 넘겼다. 만약 12월에 태어났었다면 형제는 연년생이었을 것이다. 예정일을 넘기고 버티다 1월 2일이 되었을 때 유도분만을 했고, 아기는 새해의 정기를 받으며 태어났다. 원래 그렇다지만, 유독 힘든 진통을 했던 첫째와는 달리, 진통 5시간 만의 순산이기도 했다.


주변에서 그랬다.

“이 녀석 벌써부터 엄마 힘들지 않게 효도하네~”

그리고, 그 뒤로도 둘째에게는 계속 그런 류의 수식어가 멈추지 않고 따라다녔다.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 착한 아이.”


실제로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없잖아 있긴 했다. 먹는 것과 자는 것에 특히 예민했던 첫째 아이와는 달리, 잘 먹고 푹 자주었다. 우는 사람 손 들어준다는 말은 육아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첫째 아이는 동생의 탄생으로 인해 두 해가 채 안 되는 짧은 인생사 최대 격변을 맞이하며 그 어느 때 보다도 엄마의 손을 필요로 했고, 나 역시도 ‘둘째가 생기면 첫째 아이한테는 온 우주가 바뀌는 거나 마찬가지래~‘라는, 주워들은 말들에 흔들리며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도, 내 마음의 대부분을 첫째에게 쏟아부었다. 분명 많은 부분 마음을 쏟아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둘째는 알아서 잘 큰대.”

“그게 둘째가 생존하는 방식이야.”

“얘는 태어나면서부터 효도했어.”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아.”

라는 근거 없는 말들을 위안 삼으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첫째를 낳기 전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한 엄마였다. 육아가 두렵지 않았고 드디어 올 것이 와서 기뻤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충만했다. 남편도 나를 보고 인내심이 많은 건지 뭔지 헷갈린다고 했다가 나중엔 존경한다고도 했다. 첫째 아이는 객관적으로 보기에 정말 힘들고 까다로운 아이였지만 나는 내가 아이를 받아줄 수 있어서 기뻤고 단단한 애착이 형성된 이후의 훈육 또한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쌓여,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첫째 아이를 보며, 무언가를 더 해주지 못해 안달이었을 때, 둘째는 태어났다.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나는 심한 감기에 걸렸었다. 조리원에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하나 남아있는 특실을 더 높은 가격으로 제안했고, 나에겐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대신,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물론 조리원에 있는 다른 산모들에게도 감기를 옮기지 말아야 했으므로 방 안에서 투명인간처럼 지내야 했다. 수유를 할 수 없어서 유축으로 대신했고 이 주 동안 아기를 품에 한 번 안기도 힘들었다. 태어나서 바로 엄마 품에 양껏 안겨보지 못했던 둘째, 집에 돌아왔을 때 더 많이 사랑해줘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신경은 꼬박 할머니와 지냈던 첫째에게 가 있었다. 오랫동안 할머니 할아버지와 떨어져 있어서 낯가림이 심했던 아이가 엄마 없이 잘 지냈을지 걱정이 되었고, 업무 때문에 바로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남편의 빈자리도 컸다. 엄마는 하나고, 아이는 둘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제야 실감하기 시작했다.


친정집에 들어오자 첫째 아이는 다시는 엄마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더욱 심한 껌딱지가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두 아이 모두 내가 데리고 자야 했기에, 깨는 아기를 따라 셋이서 함께 깨어 있기 일쑤였다. 그렇게 전쟁 같은 50일을 보내고 중국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을 때, 둘째의 밤은 아빠 몫이었다. 두 돌을 막 넘긴 첫째는 엄마와 함께 잠드는 시간, 밤에 깼을 때의 시간들을 경험상 절대 양보하지 않았고 그렇게 갓 50일을 넘긴 아기는 아빠와 단 둘이 밤을 보내게 되었다. 남편은 원래도 천하태평하지만 잠잘 땐 더 천하태평하다. 퇴근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신생아와 같이 밤을 보내려면 그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 같긴 하지만... 이번에도 ‘우리 둘째는 순해서 참 다행이야.’라는 말을 곁들이며 깨면 우유를 먹이고 바로 다시 재웠다.


전쟁같이 휘몰아치던 하루하루가 잠잠해져 갈 즈음, 둘째의 100일이 다가오던 어느 날이었다. 둘째의 머리통을 만져보는데, 어라? 동그랗고 예쁘게 튀어나와있어야 할 머리통이 조금 납작해져 있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둘째를 끼고 자며 자꾸 천장을 보고 누워 자는 아기를 한밤중에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봤지만 푹 자고 있던 잠만 깨울 뿐, 한번 들어간 데는 다시 나올 줄을 몰랐다. 아.. 100일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이 아이의 머리통 하나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바로 뒤통수를 크게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말은 못 하지만 웃기 시작하는 둘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만만했던 엄마로서의 내 모습은 거꾸로 산산조각이 났다.


세상에 혼자서 크는 아이는 없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태어나 놀라우리만치 빠르게 배우며 성장한다.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 젖을 먹이고, 맘마를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 외에도 말을 걸어주고 웃어주고 살갗을 닿아야 아이는 잘 클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엄마(제1 양육자) 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바보같이 ‘둘째는 거저 큰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기가 나에게 효도를 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원래부터 순한 게 아니라 순한 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첫째는 나를 힘들게 해도 되지만, 둘째는 원래 착하므로 나를 힘들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는데 생각이 다다르자, 그 감정은 곧 전에 없던 죄책감이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크게 무너졌었던 것 같다. 둘째도 쉬울 줄 알았던 나는 크게 한 방 먹고 말았다.




육아가 힘든 가장  이유 중의 하나는, 실수반복  없다는  있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사람은 실수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배워나가며 발전하는 존재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괜찮다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괜찮다고 되뇌더라도, 나의 실수는 이미 아이가 보낸 시간과 성장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아이의 시간은 분명 어른의 그것보다 확장되어 있다. 시간의 질이 다르다고나 할까. 아이를 키워보면 누구나 아이가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짧은 시간 단위로 정말이지 많은 놀이와 정보들을 해치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 음식 한 점은 아이의 몸과 마음 일부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하나의 작은 세계를 완성한다.


물론 나를 비롯한 모든 엄마들은, 엄마가 처음이므로 누구나 당연히 실수를 한다. 실수를 돌아보며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용서받고, 또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어찌 보면 이건 모든 삶에서 거치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생에서 누구나 반복하는 이 과정이, 엄마에게는 피눈물이 난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찢어져보지 않은 엄마가 과연 있을까? 아마도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제 자식에게는 차마 번복할 수가 없어서, 엄마라는 자리가 그토록 힘이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시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엄마는 위대하다’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수를 마주하는 법을 배우다]

나는 기본적으로 뭔가를 계획하는 성향은 아니다. 여행할 때도 대략적인 일정만 세워놓고 요리할 때도 계량대로 정확히 하지 않는다. 실수를 해도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는 쪽에 가깝다. 지금도 아이가 등원할 때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주지 못하고 자주 깜빡하기도 하고, 예정해 놓은 스케줄을 잊고 있다가 닥쳐서 허둥댈 때도 있다. 어느 정도 부족한 점이 있는 나를 받아들이고 산지는 꽤 되었지만, 아이에게 있어서 만큼은, 실수를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실수라 여기는 순간, 언젠가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되어버리므로, 최대한 ‘실수’의 범주 안에 호락호락 들이지 않으려 한다.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한 실수가 어찌 아이를 똑바로 눕혀 재운 것 하나뿐이겠냐만은,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실수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겠지만, 그 많은 실수들을 바라만 보기보다는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에 의지와 의의를 두고자 한다.


다행히도 아이의 머리 모양이 어떻든 간에 내 아이를 가장 예쁘게 보아줄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엄마 나 자신이기에, 그렇게 지나온 실수를 예쁘게 보듬어주되, 앞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들은 좀 더 단단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잠든 아이들이 덮은 이불 밑으로 작은 발이 살짝 나와있다. 잠이 깨지 않게 살짝 손을 대어 본다. 온기가 느껴지는 보드라운 아기발. 둘 다 발이 큰 편인데 특히 4살인 둘째의 발 사이즈는 무려 170이다. 손에 쥐면 어느새 발가락들이 삐져나오는 그런 크기다. 부쩍 자란 발이 어색하지 않고 여전히 사랑스러운 이유는, 매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일도, 실수를 메꿔가는 일도 매일 마주하지 않으면 어색해져 버린다. 그로 인해 생기는 작은 마음의 구멍은 곧 되돌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 실수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생채기들은, 벌어진 마음의 간격은 한꺼번에 좁히기 어렵다. 허투루 넘기는 일 없이 매일 사랑하고, 매일 되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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