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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yong Julie Sim May 31. 2016

사원증을 벗었다. 배낭을 메기 위해.

세계일주 가려고 퇴사한 28살 여자의 이야기

*2개월 전, 개인 페이스북 및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2년 4개월 전, 페이스북에 사원증 인증샷을 올리며 촌스럽게 쌩신입 티를 냈다.

그로부터 1년 후, 구본형 시인의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서문에 실린 시를 올리며 입사 1년 즈음 찾아온다는 직장인 사춘기를 겨우 넘겼다.

그로부터 또 1년 4개월이 지난 오늘, ‘퇴사’라고 쓴다.


퇴사를 했다. 세계일주를 위해.

Sky Diving, USA

이 두 문장을 진심으로 꿈꾸기 시작하면서부터 정말로 쓰게 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그 2년이 단순히 세계일주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한 기간만은 아니었다.

 '퇴사'나 '세계일주'라는 말을 꺼낼 때 으레 나오는 반응 및 걱정들로부터 (아직도 너 혼자 이상 속에 사니? 여자 혼자 위험하게 어쩌려고? 갔다 와서는 뭐 하고 살 건데? IS 테러 안 무섭니? 지카 바이러스 걸리면 어떡해? 등등) 나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설득시키고 믿어주는 기간이었다.


 '꿈을 꾸는 것'과 '꿈을 이루는 것' 사이에만 격차가 있는 건 아니었다.
 '마음속으로 꿈을 꾸는 것'과 '꿈을 정말로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믿어주고 결심하는 것‘ 사이에도 엄청나게 큰 격차가 있었다.


중요한 결정을 억지스럽게 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어딘가 애매하게 켕기는’ 결심이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100% 자연스러운’ 결심이 생기는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마냥 넋 놓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60살이 넘어도 그 결심이 결코 저절로 100%로 채워지진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Siem Reap, Cambodia

회사에서는 열심히 여행업계에 대해 조사하고 배웠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감사하게도 여행 비즈니스를 배우고 마음껏 탐구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직접 여행을 다녔다. 기획이라는 직무 특성상 하루 휴가 내기도 눈치 보이는 곳이었지만, 갖은 수를 다 써 재직 중 분기당 한 번 씩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SNS에서 세계일주하는 여행자들을 팔로우 했다. 나만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꽤나 큰 위안과 용기가 되었다.

온갖 여행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다.

여행 관련 팟캐스트를 찾아 들었다.

오로지 여행만을 위해 월급의 70%를 모두 저금했다.

직접 간단한 여행 에세이를 몇 편 써 보기도 했다.

여행용품 전문 쇼핑몰을 수시로 들락날락 거리면서 수납공간 많은 아이디어 상품들에 감탄했다.

'세계테마기행'과 '걸어서 세계 속으로' 인트로 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이렇게 모든 분야에 걸쳐 중증 여행 덕후처럼 살다 보니, 세계일주에 대한 결심이 자연스레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에 더해, 여기저기서 찾아 읽고 들은 명언들도 내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다.

Oahu, Hawaii

                                                                                                         

"20년 뒤에 당신은 틀림없이 했던 일보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더 화가 날 것이다.”
-Mark Twain-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John A. Shedd-
"삶을 관조와 관찰로 대체하지 말라."
-구본형 시인-
"꿈이라고 말해놓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건 영원히 꿈이다. 꿈을 가슴속에 너무 오래 두지 말고 바로 현실로 전환시켜라."
-세바시 김미경 강사 강연 중-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네 꿈을 펼쳐봐'라는 소리가 뻔한 말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꿈에 도전하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꿈을 좇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꿈과 현실이 동일해진답니다."
-김수영 작가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중-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문득, 내가 나에게 확신에 차서 말해 주었다.


 "그래, 지금이야. 너 세계일주 가도 되겠다."


그건 마치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학교 가고, 또 고등학교 가고, 대학교 가고, 졸업하고 취업을 했던 일련의 과정처럼, 지금 퇴사를 하고 세계일주를 가는 것이 내 인생의 당연한 수순으로 느껴질 정도의 자연스러운 믿음이었다.


결국 그 2년은 내가 나를 믿어주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내가 버려야만 하는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든 걱정들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세계일주를 가고 싶은 이유를 나 스스로가 인정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바로 그 날, 알라딘에서 <세계일주 바이블> 책을 사 와서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봤다.
앞으로 내가 퇴사를 하고 편도 티켓을 끊어 떠나는 순간부터, 이 지도 어디에서 어떤 것을 하든 오롯이 내 자유란 사실에 주체할 수 없이 가슴이 벅차올랐다.

Uluru, Australia
그동안 버킷리스트에 적어 두었던 것들이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버킷리스트에 적을 생각조차도 못했던 놀라운 일들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단 하루의 휴가도 내기 힘들었던 어제의 나와, 언제든, 전 세계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내 자유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내일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


이제야, 28년 만에 처음으로, 내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된 것 같다.


오롯이 행복하다. 벌써부터.


회사를 떠나기 전, 나와 함께 했던 듀얼 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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