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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yong Julie Sim Aug 04. 2016

“돌아가면 일상을 어떻게 감당하지?” in 포르투

세계일주 가려고 퇴사한 28살 여자 이야기: 포르투갈 포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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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루이스 다리 아래로 도우루 강이 가로질러 흐르는 포르투갈 항구 도시 포르투.

나는 이 곳을 얼마 전 사표를 낸 전 직장 선배와 함께 여행했다. 둘 다 서로가 그때쯤 그곳을 여행할 것이란 건 일주일 전까지 알지 못했지만, 우린 매우 우연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었다.

사실 언니와 나는 같은 회사를 다니다가 나왔고, 회사 앞에 있는 필라테스 그룹 레슨을 잠깐 같이 들었던 것 외에는 큰 공통점이 없었다. 심지어 회사 문화대로 이름 끝에 ‘~님’ 자를 붙여 서로를 칭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 포르투에 있었다. 

계획에 계획을 거듭하지 않고서야 누군가와 같은 시간에 같은 곳을 여행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는 포르투에서 처음으로 그녀를 '~님'이 아닌,  ‘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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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퇴사 후 힐링 여행’의 마지막 도시가 될 이 곳 포르투에서 혼자 유유자적할 생각으로 구해 놓았던 방에 기꺼이 나를 초대해 주었다. 리스본에서 포르투갈 친구네 집에 신세를 졌던 나는 포르투에서는 같은 여행자인 언니의 숙소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배낭여행자 신분으로는 꿈도 못 꿀, 도우루 강이 한눈에 보이는 조용하고 깨끗한 방. 그곳에 내 꼬질꼬질한 배낭 두 개를 조심스레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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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유명하며, ‘해리포터 서점’으로 불리는 ‘렐루 서점’이 있는 곳이라는 것 외에는 우리 둘 다 포르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십여 쪽 분량의 가이드북이 있었지만, 그 짧은 활자조차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지도도 보지 않고, 그냥 포르투 곳곳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걷다가 아름다운 건물이 보이면 멈춰 서서 감탄했고, 흥미로운 그래피티가 있으면 사진을 찍었고, 그늘이 보이면 앉아서 쉬다가, 또다시 걸었다.


걷다 보니, 포르투는 리스본처럼 그저 정처 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곳이었다. 리스본보다도 더 좋은 점이 있다면, 꼭 봐야 할 명소가 별로 없다는 것, 날씨가 한결 선선하다는 것, 와이너리로 유명한 지역답게 와인이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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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걸으며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언니가 앞서 걸을 땐 내가 언니의 뒷모습을 찍어 주었다. 언니는 가끔 ‘주용!’하며 앞서가는 날 불렀고, 돌아서서 카메라를 보고 민망함에 웃어 버리는 내 모습을 찰칵 순간포착했다. 언니가 사진을 찍느라 멈춰 서면, 나는 한 두 걸음 옆에 같이 멈춰 서서 사진 찍는 언니의 모습을 담았다.

서로의 카메라 속에 찍힌 우리는 참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마주쳤던 언니는 종종 색 바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포르투를 배경으로 찍힌 언니의 미소는 한 없이 밝은 오렌지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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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니와 여행하면서 오십 몇일만에 한국말을 맘껏 쓸 수 있었다. 모국어를 쓰다 보니, 아프리카와 리스본에서는 까맣게 잊고 있던 ‘회사’, ‘현실’, ‘나이’와 같은 단어들도 스멀스멀 머리를 내밀었다. 오랜만에 조금 돌아온 현실감각이 그리 싫진 않았다. 


우린 회사가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준 상처들을 꺼내며 함께 원망했지만, 그 회사란 놈이 이 아름다운 곳으로 올 수 있는 비행기 표와 이 맛있는 해산물 요리들을 살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존재였다는 걸 부정할 순 없었고, 그래서 조금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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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날, 마지막 저녁으로 바칼라우(대구)와 사르디나(정어리) 요리를 먹던 언니가 말했다. 


“난 오늘이 마지막이네. 돌아가면 일상을 어떻게 감당하지?”


‘일상을 감당한다’라.......

그 말은 스스로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을 하고 있는 나에게조차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언제부터 일상이란 게 감당해야 할 무언가가 되었을까? 다들 일상을 감당해내며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혹여 그 일상이란 걸 감당하지 못해 이렇게 떠나오게 된 걸까...?

이미 와이너리 투어에서 시음한 와인들로 살짝 취기가 올라 있었던 우리는 반짝이는 해 질 녘 도우루 강을 멍하니 바라보며 각자의 ‘일상’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과거의 일상과 어느덧 여행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재의 나의 일상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의 나의 일상이 바꿀지도 모르는 미래의 나의 일상에 대해서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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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서 우리는 마악 문을 닫으려고 하는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언니는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줄 포르투 미니어처 와인을 골랐고, 배낭에 기념품을 넣을 공간 따윈 없다는 걸 잘 아는 장기 여행자인 나는 언니의 선물을 골랐다. 내가 고른 건 포르투갈에서 유명한 ‘바르셀루스의 닭’, ‘갈루(수탉)’가 달린 와인마개였다.


나는 서프라이즈 선물을 의도한 것 치고는 너무나 멋대가리 없게도, 기념품점을 나오자마자 그 수탉을 언니에게 건네며 말했다.


“언니, 이 갈루가 행운을 상징한대요.” 

‘언니의 미래도 행운이 가득하길 빌어요.’란 말은 지나치게 낯간지러워 차마 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갈루 와인마개를 받아 들고 오렌지 빛으로 웃는 언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다가오는 그녀의 일상도, 나의 일상도, 부디 ‘감당할 만' 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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