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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yong Julie Sim Oct 18. 2016

세계여행자의 엄마

세계일주 가려고 퇴사한 28살 여자 이야기: 부모님과 동유럽 패키지여행

부모님을 태운 대형 투어버스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향해 떠나 간 자리, 엄마가 바리바리 챙겨 온 튜브 고추장과 영양제로 약간 더 무거워진 내 짐짝 하나만이 나와 함께 남았다. 

굳이 혼자 남아 일주일이나 더 있을 만큼 프라하에서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깃발 따라다니면서 후다닥 반나절 동안 보고 슝 독일로 넘어가 버리기에는 프라하라는 도시의 색감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니, 사실 하루 종일 경보 수준으로 걸으며 주요 관광지만 훑고 가는 한국식 패키지여행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엄마의 끝없는 걱정으로부터의 휴식’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

그다음 날은 날씨가 뿌옇게 흐렸다. 나는 자진해서 남아 놓고서는, 괜스레 영화 속 비련의 '버려진 아이'를 빙의하며 울적해졌다. 호스텔에서 나와 무작정 카를교를 향해 걸었다. 프라하 시내는 손바닥 만해서, 어제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났던 장소들을 고스란히 지나게 되었다.

'에고, 비싸!’를 입에 달고 사는 엄마와 내게, 아빠가 거의 반강제적으로 목걸이를 하나씩 사서 걸어 줬던 스와로브스키 매장을 지났다. 

“딱 잘 어울리네. 이렇게 좋은 것도 하나쯤 있어야지.”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검붉게 윤이 나는 체리를 투명 플라스틱 컵에 담아 파는 체코 여인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주용아, 체리 사 줄까? 너 체리 좋아하잖아.” 

이번에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엄마는 걱정이 매우 많다. 

수신기를 한쪽 귀에 꽂고 졸졸 인솔자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지극히 안전한 패키지여행임에도, 엄마에게는 하나하나 걱정할 것 투성이었다. 혹여나 가이드를 놓칠까, 자유시간 뒤 모이라고 한 시간에서 1분이라도 늦을까, 모이라고 한 장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까, 엄마는 늘 전전긍긍했다. 


엄마의 걱정의 화살은 발까지 샌들 모양대로 새까맣게 태운 채 몇 개월 만에 불쑥 나타난 나를 사정없이 명중했다. 내 딴에는 그저 자연스레 하고 있는 모든 행동들이 엄마에게는 다 위험천만한 행동으로 보이는지, 엄마는 늘 “위험해!” 하며 날 다급히 잡아끌었고, 일곱 살짜리 아이를 챙기듯 나의 모든 것 하나하나를 챙기고, 잔소리했다.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아프리카와 유럽 대륙을 혼자 넘나들며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나로서는 갑자기 정신없이 밀려오는 엄마의 그런 걱정들이 꽤나 힘에 부쳤다.

엄마와 나는 너무나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다.

나는 반복적이고, 안정적인 것에 쉽게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지만, 엄마는 다양하고, 불확실한 것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나는 고생을 하는 한이 있어도 간섭받지 않고 내 힘으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지만, 엄마는 걱정과 과잉보호로 사랑을 표현하는 데 가장 익숙한 사람이었다.

*

세계일주 출발 전 내가 본격적으로 배낭을 싸기 시작했을 때, 엄마는 엄마가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 꾸준히 날 단념시키려 했다. 

“뉴스 봤더니 지카 바이러스 아프리카에 아주 난리라던데...”

“엄마 성당에서 만난 친구가 얼마 전에 독일에 갔었는데, 테러 때문에 그렇게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더라...”

“엄마 친구가 아는 사람이 글쎄 황열병 주사 맞고 가서도 황열병에 걸려서 죽었대...” 


하루하루 점점 더 빵빵하게 채워져 가는 배낭을 지켜보며 그런 말들이 내게 조금도 먹히고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어서일까...? 엄마는 아마도 내 배낭이 거의 목까지 채워졌을 때쯤일 어느 날, 그 비싸다는 체리를 한 상자 가득 사 들고 돌아왔다.

그 날부터 엄마는 내 얼굴이 보이기만 하면 내게 체리를 먹으라고 권했다.

“주용아, 체리 꺼내 먹어. 너 체리 좋아하잖아.”

“주용아, 밥 먹었어? 다 먹었으면 체리 먹어. 너 좋아하잖아.”


엄마는 심지어 내가 세계일주를 떠나는 바로 그 날 공항에까지도 마지막 남은 체리를 싸 왔다. 그리고 조금 붉어진 눈을 감추려 빨리 입국장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나를 불러 세워, 체리 네 알을 내 입에 한 알씩, 한 알씩, 천천히 넣어 주었다.

*

체코 체리는 알이 작고 조금 시큼했다. 빈속에 들어간 체리의 산이 장을 타고 내려가며 온 몸을 찌르르, 찌르르 찔렀다.  


어쩌면 체리는 밀려오는 걱정을 다스리기 위한 엄마만의 안정제이자 진통제였는지도 모른다. 혹은 말리고 싶지만 말려도 말려지지 않을 만큼 커 버린 고집 센 딸에게, 한편으로는 “응원 하마.” 하며 쿨하게 보내고도 싶지만 엄마이기에 평생 결코 쿨할 수는 없는 엄마가 보내는, 무언의 응원이요, 간절한 기도요, 마지막 염원이었는지도 모른다.

스물여덟 살 먹은 나는 일곱 살이 아니라 네 살 취급을 받아도 좋으니, 체리를 내 입에 넣어주던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길 위에서 궁상떨며 지낼 게 뻔한 딸에게 따뜻한 옷 한 벌이라도, 영양제 한 알이라도 더 전달하려, 굳이 무리해서 이 패키지여행을 계획했을 우리 엄마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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