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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주용 JulieSim Sep 05. 2016

나를 홀린 색, 코발트블루 아라비안나이트 in 마라케시

세계일주 가려고 퇴사한 28살 여자 이야기: 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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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홀린 건 순전히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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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케시에는 특별한 마력이 있는 것 같아.”

아날로그 포토 에세이집 출간을 앞두고 있는 클라우디오가 말했다.

“그 현란한 색채,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밝은 빛, 타들어갈 듯 뜨거운 열기... 모든 게 너무 강렬해서 도대체 어디에 카메라 앵글을 대야 할지 모르겠어. “

전직 화가답게 빵모자에 체크무늬 셔츠 차림인 그는 아직 한 장도 찍지 못한 36컷 필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정말로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랬다. 마라케시에는 분명 묘한 마력이 있었다.

나도 그 마력에 홀렸다. ‘색’ 하나에 매료되어 무모할 만큼 즉흥적으로 마라케시행 비행기를 끊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코브라와 원숭이가 판을 치는 뜨거운 자마 엘프나 광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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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짝 친구와 로마에서 만나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기로 한 날을 열흘쯤 앞둔 밤, 나는 당장 다음 날 방을 빼야 하는 바르셀로나 숙소에서 열심히 다음 행선지를 물색하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바르셀로나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로마로 바로 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대표적인 관광도시답게 꼭 가야 할 명소들이 정해져 있고, 그걸 보러 가기 위한 대중교통도 우리나라만큼 잘 정비되어 있으며, 심지어 ‘가우디 종일 투어, 구시가지 골목 투어’ 등 한국인을 위한 맞춤 투어 상품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도시였다. 그런 곳에서 일주일을 여행하다 보니, 왠지 남은 기간에는 훨씬 더 낯설고 이국적인 어딘가로 훌쩍 모험을 떠나고 싶어 졌다.

그때, 아메드가 같은 숙소에 체크인했다. 파티의 섬 ‘Ibiza(이비자)’에서 보낸 짧은 휴가의 열기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듯 달뜬 얼굴로 들어온 그가, 결국 그곳에 못 가게 되어 아쉽다고 말하는 내게 작은 'Ibiza' 기념품을 선물로 건네면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는 마라케시 출신의 럭셔리 가죽 가방 브랜드 창업자이자, 수익으로 장애를 갖고 있는 마라케시 수공업자들의 교육과 자립을 돕고 있는 사회적 기업가이기도 했다.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가 하고 있는 일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는 마라케시에서 작은 게스트 하우스도 운영하고 있다면서,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꾸민 리야드(모로코 전통 가옥) 사진들도 내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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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보여준 리야드 사진들을 보다가 그중 한 방의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말 그대로 그만 심장이 멎어버렸다. 


강렬한 코발트블루와 절제된 시에나브라운 두 가지 색이 기가 막힐 만큼 조화롭게 어우러진, 신비로운 아랍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방. 

붉은 도시 마라케시 골목 구석구석이 한눈에 보이는, 커다란 파라솔과 탁자가 놓여 있는 테라스. 

그 테라스 룸은 내가 언제나 꿈꿔오던 방의 모습과 완벽히 일치했다. 그 방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이미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앞으로 일주일을 보낼 곳은 마라케시라고. 내가 고대하던 모험이 바로 이거라고.

나는 바로 그 날 바르셀로나에서 마라케시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고, 그다음 날 마라케시 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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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드는 그 테라스 룸은 내가 도착한 후 이틀 뒤에야 비게 될 거라고 말하며, 이틀 동안은 그의 부모님과 다섯 형제자매가 함께 사는 집에 묵어도 된다고 흔쾌히 초대해 주었다. 

이슬람 전통대로 아메드의 아버지가 가장 먼저 젤라바(모로코 전통 의상)를 입고 나와 갑자기 동양에서 나타난 낯선 ‘객’인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의 어머니는 흡사 이슬람 박물관처럼 고풍스럽게 꾸며진 집에 내가 이틀 동안 묵을 방 하나를 마련해 주셨다. 

모로코에는 매주 금요일 온 가족이 모여 쿠스쿠스(밀가루를 비벼 만든 좁쌀 모양의 알갱이에 고기나 채소를 곁들여 먹는 북아프리카의 전통 요리)를 먹는 풍습이 있다. 도착하고 방에 짐을 채 풀기도 전에, 아메드의 남동생 자팔이 쿠스쿠스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며 온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있는 커다란 식탁에 자리를 내어 주었다. 

이 모든 게 참으로 순식간에 일어났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모로코란 나라에 오게 될지 꿈에도 몰랐는데, 어느새 나는 얼떨떨해할 여유도 없이, 급히 배운 “살람 알라이꿈(안녕하세요.)”과 “슈크란(감사합니다.)”을 연발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볼 키스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아라비안나이트 책 속에 풍덩 빠진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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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내게 매우 생소한 종교였다. 나를 이렇게 환대해 주는 사람들에게 무지로 인한 실례를 범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쿠스쿠스를 먹자마자 관련 전자책을 빌려 읽으며 열심히 이슬람 문화를 공부했다.


45도를 웃도는 날씨에 선풍기 하나 없는 집 안에서 긴바지를 입었고, 매일 다섯 번 아잔 소리에 따라 기도를 할 때는 방해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했다. 그들처럼 나도 웬만한 음식은 손으로 먹었고, 내겐 외계어나 다름없는 아랍어 문장과 이름들을 그때 그때 메모장에 적어가며 부지런히 외웠다. 그렇게 노력을 기울이니 그들도 나를 기꺼이 일상에 받아들여 주었다.

마라케시의 진짜 하루는 해가 지고 난 밤 10시부터 시작된다.

10시쯤 어슬렁어슬렁 집에서 나와 야시장에 간다. 대가리를 빠딱 세우고 있는 코브라가 신기해 사진을 찍다가 팁을 내라는 코브라 주인에게 동전을 좀 털린다. 

몇 걸음 더 가서는 내가 쥐고 있던 오렌지 주스 컵을 날름 뺏어가 빨대로 쪽쪽 빨아먹는 아기 원숭이가 귀여워 동영상을 찍다가, 팁을 내라는 원숭이 주인에게 돈을 좀 더 털린다. 원숭이에게 주스를 뺏겼어도 오히려 돈을 내야 하는 이 곳이 바로 마라케시 야시장이다.

잠시 억울해하다가 '주스 더 마시고 싶었는데 잘 됐지 뭐' 생각하며 다시 '사이드'와 '라씨'의 주스 갑판대로 간다. 이번에는 아예 1.5L 페트병에 담아 달라고 말하니, 그들은 그 자리에서 15개도 넘는 생오렌지의 즙을 짜 페트병에 가득 담아주면서 고작 20 디르함(약 2천 원)만 받는다. 물 한 방울, 설탕 한 스푼 넣지 않은 이 100% 천연 오렌지 주스는 정말이지 살면서 먹어본 주스 중 제일 신선하고 달콤하다. 

그렇게 어슬렁 거리다 보면 어느새 12시가 넘는다. 새벽 2시까지 느긋하게 저녁을 먹는다. 

그다음 날에는 느지막이 정오쯤 일어나서 오후 1시쯤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고 나서 자꾸만 까먹는 아랍어 단어를 다시 중얼중얼 외우고 있는데, 아메드와 형제자매들이 더위를 식히러 수영장에 가자고 한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던 차에 옳다구나 싶어 냉큼 수영복을 챙겨 따라나선다. 타오르는 모로코 태양 아래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시원한 수영장 물 위에 동동 떠 배영을 하니,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수영장에서 돌아와서는 '시에스타(낮잠)'를 즐긴 뒤 4~5시쯤 점심으로 '따진'을 먹는다. 그리고 동네에 살고 계신 할머니 문병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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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옮긴 후에는 같은 리야드에 머무는 다른 여행객들도 만났다. 


"너 내일 뭐 할 거야?"

"글쎄, 넌 뭐 할 건데?"

"글쎄... 근데 너 방에는 테라스도 있다며? 부럽다."

"응, 내 방 너무 예뻐서 방에만 누워 있어도 행복해. 이 방 하나에 반해서 여기에 왔거든." 

"너 '진짜 여행' 하는 법 좀 아는구나? 오늘은 뭐 해?"

"글쎄, 넌?"

"아직 안 정했는데... 넌?"

"몰라, 뭐 할까?"

미국에서 온 네이든과 이탈리아에서 온 클라우디오. 

나 만큼이나 아무 계획도 생각도 없이 여행을 온 그들이기에 우린 금방 친구가 되었다.


마라케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사하라 사막을 가는 관문으로 거쳐가는 곳이며, 자마 엘프나 광장과 입생 로랑이 관리하고 있다는 마조렐 정원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관광지가 없다는 점이 우리를 만족스럽게 했다.

우리는 로컬 봉고차를 타고 한국판 '용추 계곡' 같은, 어떤 관광객도 굳이 찾아가진 않을 것 같은 작은 계곡에 놀러 갔다 오기도 하고, 동네 조그만 식당에서 정체 모를 600원짜리 수프를 먹고 나서 사이좋게 동시에 설사병에 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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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병 외에도 나는 모로코에서 부상을 좀 당했다.

깨진 유리에 다리 살점이 뜯겨 나가 피를 철철 흘리며 붕대를 감고 다녀야 했고, 사하라 사막에서 낙타를 타다가 엉덩이가 다 까져 한동안 제대로 앉지도 못했다. (낙타는 탈 수 있는 동물이 아님에 틀림없다...)


이렇게 각종 부상을 당할지 미리 알았어도 모로코에 왔을 것 같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마 '아니오'일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가족'이라는 단어에 목말라 있는 장기 여행자인 내가 우연히 알게 된 친구네 대가족으로부터 북아프리카 식 '정'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슬람은 여전히 내게 생소하기 그지없는 종교일 것이며, 어디 가서 "세상에서 제일 싸고 맛있는 오렌지 주스를 마셔 봤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 안, 멀어져 가는 붉은 도시와 함께 나도 아라비안 나이트 책 속에서부터 스르르 빠져나오고 있었다. 신비롭고 행복했던 시간을 더 오래 기억하라고 남겨졌을 '여행의 훈장'들을 다리와 엉덩이와 배에 주렁주렁 달고 가며 생각했다.

나를 홀린 코발트블루도, 늘 불확실하기에 기대되는 미래도, 즉흥성과 무모함의 잔뼈를 키워 준 나의 이전 여행들도... 모두 다 참으로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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