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oyong Julie Sim Sep 13. 2016

세계일주 D+100 기념일

세계일주 가려고 퇴사한 28살 여자 이야기

연애에 울고 웃던 시절 챙기곤 했던 ‘두근두근 연애 D+100일’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날인 줄 알고 친구들과 맘 졸이며 세었던 ‘심장 쫄깃 수능 D-100일’도 아니다.     


갈 곳, 잘 곳, 먹을 것, 입을 것, 탈 것, 살 것, 버릴 것 등 모든 것을 오롯이 혼자서 결정했던 여행, 그 과정에서 하루에도 수 백 번씩 스스로에게 크고 작은 질문을 하며 ‘타인이 원하는 내 모습’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찾기 위해 집중했던 여행, 그런 나 홀로 여행을 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1st. South Africa
2nd. Namibia
3rd. Botswana

#

‘지금은 어디냐, 밥 잘 먹고 다니냐, 아픈 데는 없냐, 여행이 질리지는 않냐’ 등 각종 안부를 물어오는 지인들에게 이 말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여행’과 ‘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를 하고 있어서 요즘 너무너무 행복해.”     

4th. Zimbabwe
5th. Swaziland

물론 ‘여행’이라는 단어에는 온갖 교통수단에 몸을 구겨가며 이동했던 길고 긴 시간, 좀 더 싼 숙소를 찾느라 팔았던 수많은 발품, 매 번 온 짐을 싸들고 숙소를 옮겨 다닐 때마다 곳곳에 생긴 상처들, 낯선 도시의 낯선 식당에서 혼자 먹었던 수많은 끼니들 같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글’이라는 단어에는 늦은 밤 도미토리 룸 한 구석에서 노트북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벽에 밀착하며 글을 끄적였던 시간들, 나름대로의 수많은 퇴고, 속 터지는 와이파이를 감내하던 인고의 시간들, 혹시나 내 에세이가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 이렇게 열심히 쓴 글을 누군가 읽어주기는 할까 하는 소심함 같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6th. Lesotho
7th. Portugal
8th. Spain

사랑에 빠지면 그로 인한 고통도 오히려 사랑을 더욱 두텁게 만드는 촉진제가 되는 것처럼, 이 모든 불편하고 고생스러운 과정까지 오롯이 즐길 만큼 나는 ‘여행’과 ‘글’을 사랑하고 있었나 보다.     

9th. Morocco
10th. Italy

여행으로 인해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는 듯한 그 생생한 느낌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쓰고 싶었고, 글이 쓰고 싶어서 더 많이 여행하고 싶기도 했다.          

11th. Austria
12th. Slovenia

#

100일째 되는 날, 프라하 호스텔에서 친구들과 조촐한 100일 축하 파티를 했고, 가장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여유롭게 프라하 식 아침식사를 즐기며 풍성한 대화를 나눈 뒤, 프라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지막으로 눈과 마음에 가득 담고 나서, 취리히로 향하는 야간열차를 탔다.      

13th. Croatia
14th. Bosnia

천장이 너무 낮아 15시간 내내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열차 침대칸에 누워 100일을 마무리하고 101일을 맞이하며, 100일 기념일을 꽤나 특별하게 보낸 것 같아 뿌듯해하다가, 생각해 보니 100일 중 그 어느 하루도 특별하지 않은 날은 없었기에, 이내 더 많이 행복해졌다.     

15th. Hungary
16th. The Czech Republic

‘떠나오길 정말 잘했어’라고 101번째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사이, 기차는 어느새 덜컹덜컹 국경을 넘어, 나의 열일곱 번째 나라로 향하고 있었다. 

17th. Switzerland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홀린 색, 코발트블루 아라비안나이트 in 마라케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