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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yong Julie Sim Feb 07. 2017

나 홀로 세계여행 그 후, 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세계일주 가려고 퇴사한 28살, 아니 이제 29살, 여자 이야기


며칠 전 개인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입니다. 페이스북에서는 더 많은 '미어캣'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작가의 지난 글 읽기>

- 사원증을 벗었다. 배낭을 메기 위해.

- 세계일주 D-0: 퇴사 후 세계일주 출발까지



저, 세계여행 후 한국에 돌아왔어요.

세계여행 출발 전 만들었던 명함! 사실 여행다니면서 실제로 쓰인 적은 거의 없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쿠바를 거쳐 남미로 향할까도 고민했으나, 새로이 알아보고 싶어 진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남미 대륙에 대한 호기심보다 더 크더라고요. 
저도 신기합니다. 살면서 여행보다 다른 게 더 하고 싶어 지는 때가 또 언제 오겠어요?


긴 여행에서 돌아온 날,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날 썼던 일기를 다시 읽어봤어요. 그중 마지막 구절이 눈에 띄더군요.

 (...)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난 고작 "세계일주를 꿈꿨었고, 그 꿈을 이뤘어요."라는 말 하나만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20대의 모습으로. 그래도 괜찮다. 그 한 문장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희로애락들이 농축되어 있으리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in Lisbon, Portugal

'인생의 올바른 방향과 답을 찾겠다'며 떠났었지요. 떠나는 날 저의 베스트 트래블메이트가 저에게 써 준 말처럼, '지구 위 구석구석을 항해하며 다른 이들과 나누고도 남아 결국 혼자 평생을 안고 갈 이야기'들을 담아 왔지요. 근데, 사실 인생에 정답이란 게 어디 있겠어요. '답 같아 보이는 것' 몇 가지를 찾아 소중히 안고 돌아오긴 했지만, 저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20대 후반일 뿐이죠.

그래도 괜찮아요. 
'Connecting the dots'를 위한 '점'들을 듬뿍 찍어왔으니까요.

in Porto, Portugal
젊은 시절 직관과 호기심을 따라 다양한 것들에 매료됐고, 10년 후 되돌아보니 점처럼 찍어왔던 경험들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돼 있었다. (Connecting the dots)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대학교 졸업 축사 中-
in Montserrat, Spain

#
저는 20대 내내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왔어요.

특출한 재능이 있는 것도, 전문성 있는 전공을 선택했던 것도 아니기에, 이 나이 먹도록 ‘나만의 분야’ 하나 없다는 것이 늘 콤플렉스였지요.


중어중문 전공과 전공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의 중국어, 10개월의 미국 교환학생 경험과 딱 그 정도 수준의 영어, 기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깨달음을 준 학보사 경험, 대학에서 배운 것들과는 1도 관련 없는 업무를 수행했던 회사 생활...

in Marrakesh, Morocco

이 일관성 없는 점들이 훗날 대체 어떻게 연결되려나, 연결이 되긴 하려나, 걱정도 했었죠.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참 신기해요.
그 점들이 모두 자연스레 연결돼, '세계여행'이란 선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in Heidelberg, Germany

#
'딱 10개월 교환학생 수준의 영어'와 '전공자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의 중국어'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즐기기에 충분했어요.


미국 교환학생에서의 경험들 덕분에 저는 행복이 꾸준한 자기 분석과 노력 끝에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이라는 걸 배웠지요.


짧은 중국 어학연수 경험은 여행 중 맞닥뜨리는 어떤 비위생적인 환경과 어떤 비매너를 갖춘 사람이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무던함을 익히게 해주었어요.

in Heidelberg, Germany

아프리카 해외봉사는 외면하고 지냈던 세상 구석구석으로까지 제 마음과 시야를 확장시켜 주었어요.


회사는 세상의 온갖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압축해서 겪게 해 준 ‘생생한 인생 학교’였어요. 단순한 ‘여행 수요자’로서가 아니라, 가끔 ‘여행 공급자’의 시각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스승이기도 하지요.

in Dubrovnik, Croatia


 20대를 가장 찬란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꿈을 향해 한 발자국씩 다가가면서, 움켜쥔 것은 한 움큼씩 버릴 줄 아는 용기를 내기 위해, 저는 그렇게 조금씩 단련해 왔었나 봐요. ‘꿈보다 해몽’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건진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그렇게 믿어요.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든 연관된다는 걸 믿어야 한다. 그 믿음이 여러분의 가슴을 좇아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빚어낸다."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대학교 졸업 축사 中-
in Taormina, Italy

제 20대의 점들이 연결되어 만들어 낸 선, ‘세계여행’ 덕분에 저는 제 인생 그래프에 또 다른 수많은 점들을 찍을 수 있었어요.


레소토, 모로코, 제네바, 보스니아, 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울고, 웃고, 외로워하고, 감동하고, 때론 경이로워하면서 찍었던 점들. 말로 채 표현할 수 없이 벅차고 소중한 제 7개월의 경험들.

in Rome, Italy
당장 내일일지, 1년 후일지, 10년 후일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온전히 이어져 번듯한 선을 긋게 되리라 믿는답니다.
그 믿음 하나만으로도 부자가 된 듯, 참 든든하네요!
in Lavaux, Switzerland


# 근황 1
다행히 저 '상백수'는 아니에요.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 온라인 PT/인터뷰를 하고, APAC 헤드쿼터와 계약해, 평소 좋아하던 글로벌 여행사의 프리랜서로 일하며 소소한 용돈 벌이는 하게 되었어요.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하며 돈 버는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에 반 걸음은 다가선 걸까요?


# 근황 2
여행 내내 가장 하고 싶었던 것, ‘나만의 공간에서 의식주 걱정 없이 책 읽다가, 매운 음식 흡입하고, 글 쓰고, 드러누워 자는 것’을 마음껏 하고 있어요. 떠나기 전에는 휴대성을 갖춘 여행용품들을 볼 때 설렜는데, 돌아오고 나니 ‘정착성을 띈’ 소소한 물건 (예를 들어 펌프 형 물비누)들이 참으로 깜찍해 보이네요.

in Zaanse Schans, Netherland


# 계획
여행 중에는 누가 읽어주든 말든 저의 감상 나부랭이를 줄줄 써 올렸었지요. 이제는 좀 더 실질적인 내용이나 길에서 느낀 인생에 대한 고민 같은 걸 공유해 보려 해요. 

(감상 나부랭이 에세이도 쓰긴 쓸 거예요. 그때 제가 제일 행복하니까요. 헤헤)


-퇴사와 연애의 알싸한 관계
-나는 왜 세계여행을 떠났는가?
-여행 후 내게 남은 것들
-네덜란드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
....


아마 이런 종류를 쓰게 될 것 같아요. 


in San Francisco, USA, 여행 중 10년은 늙은 듯한 나의 여행친구.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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